藝文史 展示室

10대 소녀 사랑한 노인 다룬 '은교' 작가 박범신, 이번엔… - "은교보다 더 불온해진 사랑… 세사람이 공유하게 했습니다"

yellowday 2014. 5. 8. 11:38

입력 : 2014.05.08 03:01

신작 '소소한 풍경' 펴낸 박범신… 이번엔 파격적 주제 '스리섬' 다뤄

신작 장편 '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을 들고 마주 앉은 박범신(68)의 입에서 한마디 건너 '포르노', 두 마디 건너 '섹스'와 '갈망'이 흘러나왔다. '은교'(2010) 이후 4년 만에 연애소설로 돌아온 작가는 전작보다 더 불온해져 있었다.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고 사랑을 공유하게 해봤습니다. 나는 그런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를 몰랐는데, 후배 작가가 스리섬(threesome)이라고 알려주더군요."

박범신의 연애소설은 허무라는 정조에 맞닿아 있다. 젊음은 한시적이라는 자각, 생은 영원하지 않다는 근원적 상실감이 그의 사랑 이야기를 지배해 왔다. 전작 '은교'에서 그 감정은 노작가가 10대 소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젊음을 질투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노인의 질투가 깊을수록 생의 찬란함은 도드라졌다. 이번에는 '집착의 무의미함'을 화두로 삼았다.


	논산에 살고 있는 박범신씨가 7일 새 소설을 들고 서울 인사동을 찾았다.
논산에 살고 있는 박범신씨가 7일 새 소설을 들고 서울 인사동을 찾았다. 그는“사랑이 집착에 빠지면 부자연스럽고 타인을 억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나'는 대학 내내 사귄 남자와 결혼했지만 1년 만에 이혼하고 고향 '소소'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록밴드 출신 'ㄴ'을 만나 깊은 관계를 맺는다. 얼마 후 조선족 여성 'ㄷ'이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나'와 'ㄴ'이 사랑을 나누는 방에 'ㄷ'이 들어오며 세 사람은 스리섬 관계로 발전한다.

'사랑을 공유한다'는 파격적 주제와 달리 이 소설은 유미주의나 윤리적 타락으로 귀결되지도, 이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ㄷ이 함께할 수 있도록 방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식의 설명뿐이다. 성적(性的) 판타지를 자극하거나 갈망을 해소하는 것은 애초에 작가의 목표가 아니다. 그는 "영원히 소유하면서 사랑할 수 없다면 누군가를 내 것으로 삼기 위해 들이는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는 게 어떨까"라고 말한다. 그런 생각은 영국 록그룹 비틀스 맴버 조지 해리슨의 노래를 곳곳에 배치한 데서도 드러난다. 해리슨은 삶을 방랑으로 인식했고 죽은 뒤 힌두교 의식에 따라 갠지스강에 재로 뿌려졌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사랑의 가치를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한다. 'ㄷ'은 '나'와 'ㄴ'이 사랑을 나누는 자리에 들어와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라고 소리친다.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 외침은 세상을 떠돌다 공장에 취직한 'ㄴ'의 입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제철소의 안전장치 미비로 동료가 용광로에 빠져 죽는 사고를 목격한 'ㄴ'도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라고 말한다. 회사와 세상을 향해 "너희만 잘사는 세상을 우리와 함께 잘사는 세상으로 고치라"는 요구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이 "박범신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라고 평한 이유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