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일본의 항복은 원자폭탄 때문이 아니었다?

yellowday 2014. 5. 3. 06:50

입력 : 2014.05.03 03:04

北·이란, 자위권 내세워 핵 개발 추진
전쟁 억제·평화 목적 핵 보유, 신화일 뿐
과대평가된 핵에 기댄 외교정책은 위험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위드 윌슨 지음|임윤갑 옮김|플래닛미디어|304쪽|2만원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에 섬광과 함께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올랐다.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 폭발로 히로시마는 초토화됐고 13만5000여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후유증으로 숨졌다. 사흘 뒤인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맨'(Fat Man)이 투하돼 6만4000여명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핵폭탄은 일본의 항복을 가져온 무기로 각인됐다.

오늘날 핵무기는 모든 무기 중 궁극의 절대(絶對)무기이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해결사처럼 알려져 있다. 냉전 시절 핵무기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통해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한 유용한 억제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워드 윌슨 미 몬트레이 국제대학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 선임 연구원이 저술한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Five Myths About Nuclear Weapons)는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핵무기에 대한 다섯 가지 신화가 생겼고 이를 토대로 핵정책 및 외교정책이 수립돼 왔다고 주장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격의 충격(shock),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부터 "핵무기는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반드시 준다"는 신화가,
수소폭탄이 보여준 핵무기의 비약적 파괴력은 "파괴는 전쟁에서 이기게 해준다"는 신화가,
베를린 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6·25전쟁, 제4차 중동전쟁, 걸프 전쟁 등의 위기로부터 "위기시 핵 억제 효과가 있다"는 신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유럽의 국가들이나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대전쟁 없이 65년 동안 평화가 이어진 것으로부터 "핵무기는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신화가, 그리고 이 네 가지 신화로부터 "핵무기의 대안은 없다"는 신화가 도출됐다는 것이다.


	1945년 8월 9일 미국의 원자폭탄‘팻맨’이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져 폭발하는 모습.
1945년 8월 9일 미국의 원자폭탄‘팻맨’이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져 폭발하는 모습. /플래닛미디어 제공

이 책은 이런 믿음이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역설하고 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은 원자폭탄 때문이 아니라 소련의 전쟁 개입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소련이 만주를 침략한 날 아침, 일본은 계엄령 선포를 계획하고 실행할 준비에 들어간 반면, 사흘 전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엔 계엄령을 준비하지 않았던 점, 일본 최고전쟁지도회의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가 아니라 소련이 선전포고를 한 사실이 전해진 뒤 열렸다는 점 등이 그 근거들이다. 저자는 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해상봉쇄 명령을 내린 것, 1973년 4차 중동전 때 이집트와 시리아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 등을 위기시 핵 억제 실패 사례로 강조한다.

이 책은 특히 최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논쟁적 화두(話頭)를 던져준다.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수하며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누구보다 먼저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