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여행大學' 세운 청년 13명 - 일단 표부터 사세요, 그럼 여행은 시작된 겁니다

yellowday 2014. 4. 15. 07:49

입력 : 2014.04.12 01:01

['여행大學' 세운 청년 13명]

여행에 도가 튼 20~30대가 모여 실전 팁 전수하고 계획짜기 가르쳐
세계일주, 더이상 꿈만 꾸지 말고 당장 실천하라는 게 강의의 핵심

'여행대학'은 사서 고생하는 방법을 돈 받고 가르친다. 지난달 첫 수강생 50명을 받을 때 80여명이 몰려 "나도 좀 뽑아달라"고 아우성쳤다.

주인장 13명은 고생에 도가 튼 청년들이다. 총장 강기태(30)씨는 한국교원대를 졸업했다. 동기들이 교사로 임용될 때, 트랙터와 도보(徒步)로 중국·터키를 4만㎞ 일주했다. 경희대 조리과학과 동창 류시형(31)·김승민(31)씨는 '김치버스'라고 이름 붙인 캠핑카를 몰고 400일간 미국과 유럽을 돌았다. 가는 곳마다 시식 이벤트를 열고, 외국인들에게 전라도 김치 400㎏을 먹였다. 단국대 응용물리학과 출신인 류광현(32)씨는 전기차 개발회사에 갔다가 입사 1년 만에 회사가 어려워져서 퇴직했다. 그는 다음 취업에 목 매는 대신 단돈 700만원을 들고 31개국을 돌면서 한국인 CEO 170명을 만나 성공 비결을 물었다.

‘여행대학’ 강기태(가운데) 총장과 창립 멤버들이 서울 대치동 동일타워의 사무실에서 강의를 앞두고 모였다. /윤동진 객원기자
이들은 각자 여행 다녀와서 책 쓰고 방송 나가고 강연 다니다가 이심전심 친해져 '형님·동생'이 됐다. 이들이 뭉쳐 올 초 세계여행을 꿈꾸는 일반인에게 노하우를 가르치는 회사를 차렸다. 한 학기 등록금 30만원. 한 번에 3시간씩 격주로 3개월간 강의하고, 단체로 졸업여행을 간다. 올 하반기 부산·광주 등에 지점도 낼 계획이다.

첫 학기 예상 수익은 100만~150만원이다. "그걸로 장사가 되느냐?"고 묻자 강씨는 "당연히 안 되죠" 했다. "그렇지만 당장 얼마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에요." 13명 모두 여행 말고 따로 생업이 있다. 강씨는 고향집 농사일을 거들면서 연간 70회 이상 강연을 다닌다. 다른 사람들도 변호사·회사원·자영업자·NGO 직원 등으로 일한다. 그럼 뭐하러 이런 수고를 할까? "각자 강연 다니면서 느낀 바가 컸어요. 저희들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요."

주인장들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이다. 전공·이력·직업이 제각각이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행은 사람을 바꾼다"는 믿음, 그리고 "일단 해본다"는 태도다. 그들이 동년배에게 강연할 때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강연 끝날 때 누군가 손 들고 꼭 물어봐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부러워요. 저는 뭘 해야 될까요?' 저는 말하죠. '제가 어떻게 알아요? 스스로 찾으세요.' 다들 자기도 떠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면서, '어떻게 결심했느냐'고 해요. 제 대답은 간단해요. '일단 표를 사세요. 표 사는 게 반입니다.'"(강기태)

여행대학 강의의 핵심은 "꿈만 꾸지 말고, 꿈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주인장들은 "어디 가면 뭐가 좋고 어느 집이 맛있다"는 식으로 관광 정보를 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은 어느 나라에 왜 가고 싶으냐?"고 묻고, 수강생들이 스스로 여행 계획을 짜도록 돕는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전 팁도 전수한다. 필리핀 우범지대에서 합승 택시를 탔다가 총 든 강도를 만난다면? "곧바로 두 손 들고 가진 돈을 전부 주세요.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먼저 죽이고 나중에 지갑을 뒤지겠지요."(류광현)

인도에서 손으로 카레를 먹고 배탈이 났는데 한국에서 가져간 지사제가 소용없다면? "현지에서 걸린 병은 현지에서 파는 약을 먹어야 나아요. 고산병도 타이레놀 삼키는 것보다 코카 잎 씹는 게 효과가 좋았어요."(문현우)

길 안내해 주겠다던 현지인이 인적 드문 곳에서 갑자기 추근댄다면? "섣부른 호신술보다 페퍼 스프레이가 낫죠."(김물길)

취업난에 시달리는 동년배에게 주인장들은 "너무 일찍 좌절하거나 냉소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목표를 정해 당장 도전하라"고 했다. 작은 거라도 상관없다. '일주일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기'가 'A학점 받기'가 되고, 나아가 '장학금 받기'가 된다. 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하나? "또 해야죠, 될 때까지."(강기태)

여행대학 총장 강씨는 "우리도 단박에 꿈을 이룬 건 아니다"고 했다. 그가 "교사가 되는 대신 트랙터로 전국을 일주하겠다"고 했을 때, 경남 하동에서 농사짓는 아버지는 대로(大怒)했다. "문디 자슥, 지○하네!" 그에 굴하지 않고 전국의 트랙터 회사를 돌며 "트랙터 한 대만 빌려달라"고 설득한 끝에 아들은 전국일주뿐 아니라 세계여행도 했다. 여행대학 커리큘럼 중 하나가 '협찬받는 법'이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첫 학기 강의실도 여행으로 알게 된 지인이 거저 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