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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풍송등왕각(時來風送騰王閣) , 운퇴뢰굉천복비(運退雷轟薦福碑

yellowday 2014. 3. 10. 18:37

 등왕각   

                                                                           훈민학당    



時來風送騰王閣  시래풍송등왕각
運退雷轟薦福碑  운퇴뢰굉천복비


(때가 오니 바람이 등왕각으로 보내주고

운이 가니 천복비가 벼락을 맞고 깨어졌다)

첫 문장은 중국 강서성 남창현에 있는 당고조의 서자 이원영이 지은 등왕각이라는 정자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데

칠백리나 떨어진 곳에서 향하던 왕발(王勃)이 탄 배가 갑자기 불어 온 바람을 타고 하룻밤 사이 등왕각에 당도하여

유명한 등왕각서(騰王閣序)라는 명문을 지어 이름을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는 故事를 가르킨다.

다음 문장은 역시 강서성(江西省) 심양현에 당나라의 문장가 이북한의 글을 구양순의 글씨로 유명한 천복비(薦福碑)라는

비석에 관한 이야기이다. 강남의 어느 부유한 이가 천복비의 글씨를 탁본해 오면 천금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가난한

한 선비가 천리 먼길을 달려 천복비에 당도하니 바로 전날밤에 내린 벼락에 비석이 깨져버렸다는 故事로

명심보감에 실려있는 글이다.

 

 

중국 당(唐)의 왕발(王勃:649∼676)이 지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

 

원 제목은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符滕 王閣錢別序)》 《등왕각시서(滕王閣詩序)》라고도 한다.

등왕각은 그 옛터가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난창시[南昌市]에 있다. 초당사걸(初唐四傑) 중의 한 명인 왕발(王勃)은

명문가 출신으로 재능이 뛰어나 성년이 되기도 전에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곧 남들의 시기를 사게 되어 일찍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로부터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도처를 유랑하기 시작하였다.

 

고종(高宗) 때인 676년 중양절(9월 9일)에 홍주도독 염공(閻公)이 등왕각에서 주연을 열고 손님들을 청했는데 마침

왕발이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난창을 지나다가 이 연회에 참석하여 즉석에서 이 시와 서를 지었다. 전반부는 홍주 일대의

 "번화하고 풍요로우며 인물은 뛰어나고 지세는 신령스러운" 형세와 등왕각의 수려하고 웅장한 아름다움 및 연회의 성황을

그렸다. 후반부에서는 타향에서 객으로 지내며 품은 뜻을 펼쳐 볼 수 없음을 탄식한다.

경치 묘사와 서정적 묘사를 결합시켜 단숨에 지어내어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형식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이며,

대구가 뛰어나고 음운도 잘 맞는다. 사조가 화려하고 우아하며, 전고(典故)를 많이 인용하였다. 풍격은 소탈하면서도 원숙하고

힘이 있으며,

 

 "지는 노을은 외로운 기러기와 함께 날아가고,

가을 강물은 아득한 하늘과 일색이구나"

 

등과 같이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명구도 있어 오래도록 널리 전해지는 명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