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알록달록 산골, 예순일곱 그가 少年처럼 노닐었네

yellowday 2014. 3. 2. 09:19

입력 : 2014.02.27 00:04

-'풍수 시리즈' 오승윤 개인전
단순하고 생생한 오방색 풍수화 死後 8년 만에 세상 빛 보게 돼
아버지 오지호 화백 뒤이은 작가… 아들도 3代째 화가의 길 걸어

그림 앞에 서니 볼우물이 절로 패었다. 핫핑크, 샛노랑, 진초록…. 시리도록 또렷한 총천연색 산 위에 알록달록 앙증맞은 물고기,

초가집, 나무가 떠다닌다. 가슴 구석 잿빛 우울이 말끔히 사라졌다.

"선생님(남편)이 이 그림들 그리며 전시 준비할 때 참 행복하셨답니다. 일흔 앞둔 노인이 열다섯 소년처럼 천진난만하다 했는데…

." 지난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시작한 '오승윤(1939 ~2006·왼쪽 사진)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의 부인 이상실(67)씨는

 잠시 회한에 잠겼다. 색 취향도 부창부수인지 그녀는 빨간 재킷 차림이었다.


	작가 오승윤. (오른쪽 사진)전시장을 찾은 오승윤 화백의 부인 이상실(오른쪽)씨와 아들 병재씨.
(오른쪽 사진)전시장을 찾은 오승윤 화백의 부인 이상실(오른쪽)씨와 아들 병재씨.
오승윤은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한국 전통의 오방색(파랑·빨강·노랑·하양·검정)을 재해석해 현대적인 풍수화(風水畵)를 구축한 작가다.

인상주의 대가인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차남이기도 한 그는 2006년 전시 준비 중에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시에 앞서

진행하던 화집 발간이 복잡한 이유로 차질을 빚으면서 전시가 미뤄진 게 자살 이유로 추정됐다.

당시 작가가 전시를 위해 작업했던 '풍수 시리즈' 40점이 8년 만에 전시장에 걸렸다.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이다. 여기에 초기 정물화, 민속화 10여점이 더해졌다. 풍수 시리즈는 오방색을 토대로 만든 원색을 사용해 물·불·바람· 기운 등

풍수사상을 이루는 자연 요소와 마을, 초가집 같은 정겨운 시골 풍경을 미니멀하게 시각화한 작품이다.

40여년 남편 곁을 지킨 부인은 작가의 살아 있는 입이 돼 생생히 작품을 설명했다. 찔레꽃 필 무렵 섬진강 어귀, 지리산 자락을

휘휘 돌고 와서 화폭에 임한 오승윤이 말했단다. "산에 걸린 구름이 나비처럼 생겼더구려. 물결은 산처럼 생겼고." 암호 풀기라도 하듯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그림 속으로 이끌었단다. "내 그림의 기(氣)는 옆에서 스며들기도 하고, 동그란 물방울처럼 여기저기 떠다니기도 한다오."

이씨는 1982년 시아버지 작고 이후 남편이 물려받아 썼던 광주광역시 지산동의 초가집 작업실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바닥을 보면 두 분 화풍 차이가 선명히 느껴집니다. 아버님이 남긴 파스텔톤 유화 물감 자국 위로 선생님의 오방색 물감이

뚝뚝 떨어져 있어요." 부자(父子)가 작업실에 남긴 색채의 켜는 우리 화단의 한 역사이기도 하다.


	오승윤의 풍수 시리즈 중 하나인‘산간과 마을’.
오승윤의 풍수 시리즈 중 하나인‘산간과 마을’. 오방색을 변형시킨 알록달록한 원색 바탕 위에 앙증맞은 초가집, 물고기, 나무가 보인다. 기(氣)가 스며드는 형세는 화폭 가장자리에 퍼져 있는 토끼 귀 모양으로, 하늘의 구름은 나비 모양으로 표현했다. 오승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한국의 전통 정신과 우주적 질서가 복원되기를 기대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색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아들 병재(40)씨가 입을 뗐다. "아버지에게 오방색은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오방색은 서로 충돌하면 자칫 촌스러워 보이는데 당신만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뤄내셨어요." 병재씨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따라

3대째 화업(畵業)을 잇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림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만 그저 묵묵히 그림 그리는 뒷모습만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모자(母子)는 오승윤의 죽음을 "예술적인 삶에 있어 일종의 몸짓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작가가 평생을 바쳐 빚어낸 오방색의 변주가 보는 이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기를. 전시 3월 23일까지. 문의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