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 [19] 김기창 '보리타작'
흰 저고리, 치마,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여인네들이 분주하게 타작을 하는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거두어들이는농부들의 뿌듯한 감개가 더없이 리얼하게 전달된다. 이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한 시대의 풍속이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되살아나면서 애틋한 상념에 잠기게 한다.
- 김기창,〈보리타작〉, 1956
적절하게 구사되면서 강한 필선의 요약이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상황을 더욱 탄탄하게 조여주는 특징을 보인다. 같은 장면을
사실적인 묘법으로 구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타작마당의 역동감 넘치는 장면 전개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필선에 의한
구성의 탄력과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표현의 욕구가 아니었다면 한갓 삽화로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1913~2001)의 뛰어난 조형의식을 만나게 된다.
김기창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물을 입체적인 방법으로 구현해내는 실험을 펼쳐보였다. 동양화(한국화)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대담한 형식실험을 시도해 준 것이었다. 일본화의 영향이 잔재했었던 당시, 운보의 방법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오던 사실적인 풍속도가 이 새로운 방법에 의해 재창조되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실험적 의지는 만년까지 이어졌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