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아름다운 한국 채화 궁중채화

yellowday 2014. 2. 28. 16:08

입력 : 2014.02.26 09:13

생명존중사상으로 피어난 꽃

아름다운 신성(神聖)은 꽃이다. 들에 피어있는 한 떨기 꽃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더욱 아름다운 꽃은 인간과 자연의 정령(精靈)으로 피어올린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채화(綵花)이다. 영원불멸의 왕조를 염원한 조선왕조 500여 년 간의 궁궐 장엄(莊嚴)은 인간의 정령으로 피어올린 가화(假花) 즉 조화만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꽃이 지천인 봄과 가을에도 생화를 꺾어 실내를 장식하는 것을 금했다. 풀 한 포기조차 귀하게 여긴 조상들의 생명 존중의 마음 때문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채화는 현존하는 유물이 거의 없으며, 사료가 희귀하여 그 당시의 채화기법을 자세히는 알 수 없다. 가화는 다른 유물과는 달리 몇 백 년간 보존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시기에 자연 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고려사』를 비롯하여 조선왕조의 궁중의례를 기록한『 진연의궤』,『 풍정도감의궤』,『 청장관전서』,『 악학궤범』 등의 귀중한 사료를 통하여 한국의 채화 양식을 재연하였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라져가던 궁중채화를 완벽히 재연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기록문화유산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머리에 잠화(簪花, 머리에 꽂던 가화)하기를 좋아한 민족이다. 이러한 내용은 단군조선의 연대기인『 단군세기』에 잘 나타나 있다.

戊戌二十年 / 未婚者弟讀習射號爲國子郞 / 國子郞出行頭揷天指花 / 故時人爲天指花郞

단군은 신단수 아래 소도(蘇塗)를 설치하고 미혼의 자제들로 하여금 글과 활쏘기를 익히게하고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불렀다. 국자랑은 먼 길을 떠날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이러한 유습은 신라시대 원화(源花)와 화랑(花郞)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은 전쟁에 나갈 때 화려하게 단장하고 항상 머리에 꽃을 장식하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머리에 꽃을 장엄하기를 즐겨하였는데, 이는 꽃이 음귀와 재앙을 쫓으며 신분의 신성을 상징하는 성물(聖物)이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 기다림으로 빚다

유교국가인 조선왕조는 예(禮)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궁중의례가 장엄하고 엄숙하였다. 궁중의례에서 어좌의 좌우를 장엄하는 꽃은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이화(李花, 오얏꽃)였다. 국가를 상징하는 오얏꽃 화준은 궁중에서 중요한 의례를 행할 때 임금의 자리 양 옆에 홍벽도화준(紅碧桃花樽) 한 쌍으로 장엄되었다.

龍樽一廚院所盛白米一石司導 / 寺紅桃一本碧桃一本維紅木二疋 / 紅線索二艮衣本所措偏

홍벽도화준 한 쌍에는 각각 백미 한 섬을 넣고, 사도사에서 가져온 홍벽도화 한그루에는 붉은 천으로 묶어 치장하였다. -『순조기축진찬의궤』 중

花樽花長九尺五寸分欌紅碧桃花 / 綴以翡翠胡蝶之屬凡二千朶 / 揷於二龍樽


 

용준 위에 꽂혀지는 홍벽도화 나무의 길이는 각각 약 3m이다. 비단으로 만든 홍벽도화를 각각 2,000다발 붙이고, 꽃과 꽃 사이 온갖 예쁜 새들과 꿀로 빚은 곤충 12다발, 비취(翡翠)로 빚은 나비들로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고종임인진연의궤』 중

이를 통해 꽃과 새, 곤충들이 조선왕조를 찬양하고 국왕을 칭송하며 나라의 태평성대를 노래하며 춤추었다. 조선왕조의 상징 꽃인 홍벽도화준 한 쌍은 단순한 궁궐장엄을 넘어 조선왕조의 신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국가 잔치에 참여하는 국왕을 대표하는 문무백관과 종친, 내외명부를 위한 정재(呈才)에 출연하는 여령들과 무관들의 머리에도 모두 왕이 내린 홍도화를 잠화하여 그 의례의 화려함이 그지없었다.

채화는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신비한 꽃이다. 채화 제작 기법은 모든 제작과정이 자연으로부터 온 천연재료들로만 제작되며 모든 과정이 수공예기법이다. 아름다운 꽃빛을 채염하기 위해서는 사계절 꽃이 피고 지는 일 년간의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붉은 빛 홍도화는 홍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인 6~7월 경에 채염하고, 늘 푸르고 청정한 쪽빛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싱그러운 여름이 지나 초가을 날 그 즙을 짜 발효시켜 천연 염색하였다. 또 꽃술은 고운 모시털(細苧布)을 뽑아 꽃가루와 밀초를 바르고, 꽃잎은 한 장 한 장 밀납(蜜臘)을 붙여 인두질하여 빚어냈다. 이처럼 채화는 오랜 기다림의 미학과 인고의 나날이 여물어 한 송이 꽃으로 피어오른다.

한 송이 채화꽃은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또 하나의 아름다운 창조물이며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신비한 꽃 중에 꽃이다. 이러한 신비성은 세계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만의 전통문화이며 공예예술이다.


글ㆍ사진 황수로(중요무형문화재 궁중채화 기능 보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