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15 09:00
서촌 구석에 있지만 '맛있는 빵집' 입소문에 강남서도 사러 와
"아이에게 먹일 수 있게 안전하면서도 맛도 있어야"
서울 서촌 옥인동 골목길 구석에 있는 작은 빵집 ‘슬로우브레드 에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가을 모대기업 회장 부인과 서촌을 걸을 때였다. 사직단 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 서촌 골목길을 가면서 이 빵집 앞을 지나는데 대기업회장 부인이 “이 집 빵이 내가 먹어본 빵 중에 가장 맛있더라”고 하면서 빵을 사러 들어가서 따라 들어가 보았다. 스스로 ‘빵 중독자’라고 하는 그 부인은 “주말에는 빵을 사러 일부러 차를 가지고 이곳에 온다”고 하였다.또 광화문 근처 풍림아파트에 산다는 60대 여성 손님은 “이 집 빵은 가미되지 않은 천연의 맛” 이라며 “빵을 무척 좋아해 자주 먹는데, 이 집 빵은 소화가 잘돼 먹고 나서 속이 편하다”고 했다.
모두가 칭찬 일색이었다. 하긴 이 집 빵이 마음에 안들면 아예 오지 않았을테니 비판적인 목소리는 없을 것이다. 기자는 트집을 잡고 싶어 손님들에게 물었다. “가격이 좀 비싼 편이 아닌가.”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이 정도 가격은 요즘 비싼 편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좋은 재료를 충분히 쓰면서 이 정도 가격이면 매우 합리적”이라는 옹호의 말 뿐이었다.
- ▲ 슬로우브레드는 빵가게라기 보다 빵공방 같은 분위기였다. 계산대 위와 벽에는 빵과 관련된 책자들이 많이 꽂혀 있다.
빵을 왜 좋아하는가 물었다.
- “발효음식에는 섬세함이 있다. 날씨, 기온, 습도, 시간, 사람의 손길 등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빵도 발효음식이어서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과 깊이가 다르다.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을 다해 정말 맛있는 빵을 만들어 보고 싶다.”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좋은 밀가루와 좋은 효모를 써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발효시켜야 한다. 우리 가게는 밀가루는 유기농 밀가루와 좀 비싸지만 첨가제나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프랑스, 호주, 캐나다 밀가루를 구입해 사용한다. 효모도 직접 발효시키는 천연효모 2종류와 대량생산된 효모를 같이 쓴다. 그리고 반죽된 밀가루를 적게는 5시간에서 18시간 정도 발효시킨다.”
- ▲ 슬로우브레드 에버 문혜영 사장. 매장에는 빵을 먹고 갈 수 있는 탁자나 의자가 없어 인터뷰 내내 서서 이야기 했다.
유기농 밀가루, 천연효모를 쓰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물론 유기농 밀가루, 천연효모를 쓰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기농 밀가루만 고집하여 어느 빵이든 똑 같은 밀맛만 난다면 사람들은 빵에 금방 질려버릴 것이다. 빵도 음식이기 때문에 맛도 중요하다. 그리고 소화도 잘돼야 한다. 유기농 밀가루만 쓰면 맛이 단조롭다. 어쩌면 누군가는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유기농 밀가루를 포함하여 안전한 밀가루를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여러 종류의 효모와 다양한 발효법을 사용하면 깊고 다양한 맛의 빵, 그러면서도 몸에 좋고 소화도 잘되는 빵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 ▲ 슬로우브레드 에버 빵가게의 입구. 건물 주차장의 안쪽에 있고, 별다른 장식도 없고, 입구에는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에서 수입된 밀가루 포대가 쌓여 있어 빵가게가 아니라 공방 입구 같은 모습이다.
-“빵, 특히 식빵의 폭신하고 촉촉한 식감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첨가제를 써야 하는데, 슬로우브레드 에버의 빵은 첨가제를 쓰지 않기 때문에 당일 먹는 것이 좋다. 그래서 빵도 매일 팔 것만 만드는 것이다.”
문사장은 7년 전부터 빵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주로 금융관련 프리랜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가상의 제품이 아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문사장은 “부모님들이 모두 당뇨병을 앓고 있는데, 특히 빵을 좋아하셔서 당뇨병에 덜 해로운 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빵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고 혼자 연구 실험하다가 보다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빵을 검증 받기 위해 2012년 7월, 이곳에 작업실 겸 빵가게를 열게 되었다.
- ▲ 직장 다니는 동네 손님이 슬로우브레드 에버의 빵을 맛볼 수 있도록 예약 판매도 하고 있다. 보통 하루에 10여 건의 예약이 있다고 하였다.
손님 중에는 동네 손님 뿐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강남에서 오는 손님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는 동네 사람들이 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 ‘예약제 판매’도 하고 있다. 빵은 보통 6시 이전에 다 팔리지만 동네 사람들이 퇴근하면서 예약된 빵을 찾아갈 수 있게 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 ▲ 손님 5~6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작은 매장. 당일 만든 빵은 6시 정도면 완전 매진. 슬로우브레드 에버는 동네 빵집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빵집 사업과 관련해서는 “직원들을 금전적으로 충분히 대우해주고 복지도 좋은 빵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문사장은 “동네 사람들이 우리 빵을 인정해 줘 장사가 잘되는 것이기에 동네 분들에게 감사하고, 동네를 위해 기여하는 일을 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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