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주경철 지음|서울대출판문화원|336쪽|2만원
'지엄하신 전하, 저는 처자들을 뒤에 남겨 두고 조국을 떠나 당신을 위해 봉사했으며 그러느라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소진했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 이 위업을 알리는 서한을 교황청에 보내셔서 제 아들에게 추기경 직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1451~1506)가 1493년 2월 스페인으로 귀환하는 도중 쓴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신의 업적에 걸맞은 대접을 해달라며 스페인 국왕에게
노골적으로 인사 청탁을 하고 있다. 이어 '예루살렘 정복전쟁을 위해 5000명의 기병과 5만명의 보병을 동원할 자금을 전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신대륙 항해의
목적이 성지 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군사비 확보라고 말한다. 속물로 보일 만큼 세속적이면서 또 한없이 종교적인 콜럼버스의 맨얼굴이다.
역저 '대항해시대'를 통해 15세기부터 해양 팽창으로 근대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밝힌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이 왜 그토록
아시아로 가려고 했는지를 밝히는 데 도전한다. 콜럼버스가 직접 쓴 항해 일지 사본과 편지, 비망록, 메모 등이 1차 자료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인 콜럼버스는 해외에서 업적을 이뤄 귀족 지위를 얻는 게 평생의 목표였다. 동시에 그는 독특한 지구관과 우주관, 점성술적
지식에 탐닉, 세상의 종말이 150년밖에 남지 않았고,'새로운 다윗'이 이끄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회복해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지상의 임무라고 믿는 종말론적
태도에 사로잡혀 있었다. 구원받을 인류가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지상낙원(에덴동산)이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다고 믿고, 그것을 확인하는 걸 소명으로 여겼다.
- 스페인 마드리드 콜론 광장에 서 있는 콜럼버스 전신상. /블룸버그
콜럼버스의 다독(多讀)이 이런 종말론적 강박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콜럼버스는 호메로스, 세네카, 오비디우스 등
고전을 섭렵하면서 주석을 달았다. 마르크 폴로의 '동방견문록'엔 366개의 주석을 달았고, 플루타르크의 '전기'에도 20명의 인물에 대해 437개의 주를 달았다.
문제는 콜럼버스가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시켜주는 것만 골라 읽는 편식이 심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개종 대상이자 문명화와 노예화의 대상으로 파악한 것은 잘 알려졌다. 옷을 훔쳐간 현지 주민들의 귀를 자르고, 처형할 것처럼
겁을 주는 '공포 통치'를 펼쳤다. 식민지 사업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인디언을 포로로 잡아와 스페인에 노예로 팔았다. 주 교수는 그토록 강렬한 염원을 갖고 바다로
나갔고, 다른 문명들에 대해 극히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유럽인들의 심리적 동인이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기 위한 강박증 때문이 아닐까 하고 분석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로 세계는 하나의 흐름 속으로 통합되는 근대가 시작됐다. 콜럼버스가 생각했던 종말은 아니지만, 그 이후의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목격했다. '콜럼버스는 근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준비한 중세의 예언자이자 활동가였다'는 게 이 책의 독특한 결론이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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