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110] 개척, 고독, 자유의 꽃

yellowday 2013. 9. 14. 06:59

 

입력 : 2013.09.13 03:22


	조지아 오키프, 검은 아이리스Ⅲ 사진
조지아 오키프, 검은 아이리스Ⅲ, 1926년, 캔버스에 유채, 91.4×75.9㎝,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큰 캔버스 전체를 아이리스 꽃 한 송이가 뒤덮고 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검은 꽃술에서는 미세한 분말이 올라오는 것 같고, 동그랗게 말려있다.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겉 꽃잎은 손을 대면 바스러질 것처럼 여리고 곱다. '검은 아이리스Ⅲ'는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887~ 1986)가 반복해서 그렸던 많은 꽃 그림 중 하나다.

오키프는 20세기 초의 미국 모더니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녀는 마치 고화질 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밀하게 꽃의 질감을 표현했지만, 사실 진짜 관심사는 특정한 꽃을 묘사하는 것이었다기보다는, 그 형태가 가진 조형성이었다. 실제로 큰 화면 위에 유기적 곡선과, 검은색으로부터 어두운 자주색을 거쳐 핑크와 회색으로 변화하는 색채가 어우러진 이 그림은 추상 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 화가가 드물던 시절에 대담한 꽃 그림을 들고 나온 오키프에 대해 평론가들은 일제히 '여성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첩된 곡선과 중심핵을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듯 퍼져 나간 꽃잎이 여성의 몸을 닮았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눈에 그녀는 관능적인 꽃의 화가였고, 여성들에게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몸을 당당하게 드러낸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다. 그러나 오키프는 이와 같은 성적 해석을 일관되게 부인했고, 자기 그림을 '여성'이라는 틀 안에 가두기를 거부했다.

오키프는 많은 미국 화가가 성지순례라도 하듯 유럽행을 열망할 때, 오히려 미 서부의 뉴멕시코 황야로 이주해 수도승처럼 홀로 살며 그림을 그렸다. 꼬박 한 세기를 살고 세상을 떠날 무렵 그녀는 개척 정신과 고독한 자유라는 미국적 이상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