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112] 정물화로 표현한 人生무상

yellowday 2013. 10. 6. 10:41

 

입력 : 2013.10.05 03:03

갓 구운 파이가 테이블에 나왔다. 향긋한 냄새가 따뜻한 기운과 함께 온 방 안에 퍼진다. 파삭한 파이 껍질을 가르니, 
탱글탱글한 블랙베리와 견과류가 쏟아져 나온다.글자 그대로 '그림의 떡'이지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기름지고 윤기가 도는 이 파이의 주인은 누굴까. 그는 파이를 잘라 놓은 채,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다.



	빌렘 클래즈 헤다, 블랙베리 파이가 있는 식탁 작품 사진
빌렘 클래즈 헤다, 블랙베리 파이가 있는 식탁, 1631년, 나무판에 유채, 54×82㎝, 드레스덴 회화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가 빌렘 클래즈 헤다(Willem Claesz Heda·1594~1680)는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라틴어 '바니타스'는 인생무상, 즉 유한한 인간의 삶이 헛되고 덧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 속의 파이와 온갖 사치스러운 물건들은갑작스레 주인을 잃었다. 
곱게 다림질한 테이블보, 정밀하게 조각된 은제 식기와 유리잔은 그가 얼마나 부유하며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그릇들이 넘어지고 깨진 모습을 다시 보니, 그는 달콤한 파이를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마치 태풍에 휩쓸려 
가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어디론가 끌려갔다.

허망하게 주인을 잃은 회중시계는 괴괴한 적막 속에서 저 혼자 째깍대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마저도 멈추고 말 것이다.

일찍이 개신교의 칼뱅주의를 추종했던 네덜란드인들은 근면성실하게 일한 대가로 얻은 부와 세속적 성취를 거리낌없이 

자랑했지만, 그들의 자부심이자만심과 허영심으로 부풀어 오르지 않도록 늘 경계했다. 사실 정물화 자체도 사치품이다. 

하지만 이 사치품조차도, 자만심이 도를 넘으면 누구라도 이 그림의 파이 주인처럼 "한 방에 훅 간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