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너절하지 않은 화가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다"

yellowday 2013. 8. 25. 13:00

'물방울 화가' 김창열, 畵業 50년 기념 개인전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너절하지 않은 화가로."

긴 침묵 끝에 노(老) 화백이 입을 열었다. "어떤 화가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너절한 게 뭐냐"는 물음에 그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했다. 잠깐 영롱했다가 이내 얼룩만 남기고 사라지는 물방울이 그의 붓끝에서 무한함을 입었듯 그는 물방울과 함께 오래 기억되기를 원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84·사진) 화백이 화업(畵業) 50년을 결산하는 개인전을 갖는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9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거친 마포(麻布) 위에 그린 1970년대 작품부터 배경에 한자(漢字)를 넣어 어릴 때 천자문을 배우며 어렴풋이 느꼈던 문리(文理)의 세계를 녹여 넣은 1990년대 이후 작품까지 '물방울' 40여점을 총망라했다.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월남, 서울대 미대를 중퇴한 그가 '물방울'과 제대로 만난 것은 1972년 무렵 파리 근교의 마구간에서 살 때였다. "작업하다 뒤집어놓은 캔버스 위에 튄 물방울. 크고 작은 물방울이 캔버스 뒷면에 뿌려져 햇빛에 반사되는 순간 아주 찬란한 그림이 되었어요."

김 화백은 "물방울은 무색무취한 거라 별 뜻이 없다. 나는 그걸로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가끔 그 물방울이 영혼과 닿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 작가로는 드물게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이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 공사가 내년 봄 제주시 '저지예술인마을' 내에 첫 삽을 뜬다. 김 화백이 6·25 때 1년간 이 섬에서 피란 생활을 한 인연에 제주도가 건립을 지원하고 나섰다. 김 화백은 평생 그린 작품 500여점 중 200여점을 이 미술관에 기증했다.


	김창열의 2011년작‘회귀, SH2013003’(부분).
이 물방울에 김창열은 그가 살아온 모든 날을 담아 왔다. 파리에 거주 중인 그는 요즘 조수 두 명과 함께 작업한다. 김창열의 2011년작‘회귀, SH2013003’(부분). /갤러리현대 제공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된 김 화백은 이미 유언장을 써 놨다. 최근 그림을 기증하면서 두 아들에게 주기로 했던 그림 일부를 기증 목록에 올린다고 유언장을 고쳤다.
'물방울'이 무르익기 시작했던 1976년 활기 넘치는 40대였던 김 화백의 전시를 처음 열었던 박명자(70) 갤러리 현대 회장이 귀가 어두워지고, 손을 떨고, 자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노화가를 보면서 말했다. "미술관 문은 살아 계실 때 열어야 하고, 이 전시는 마지막 전시가 아니어야 해요." 이 말을 하다가 그는 식사용 냅킨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02)2287-3500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