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14 16:20
‘학무’와 ‘연화대무’가 더해진 춤사위의 진수
무대 앞 중앙에는 등이 있고 그 양쪽에는 꽃이 놓여 있다. 뒤로는 등과 꽃의 사이로 연통蓮筒이 동서로 갈리어 있고 꽃이 나란히 일자로 수를 놓는 듯 가지런하다. 신성이 조화를 이룬 주변에는 청학과 백학이 동발을 든 악사에 의해 점잖게 등장한다. 신비한 기운마저 감돈다. 청하하고 맑은 춤사위가 이어진다.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무대 뒤편의 지당판池塘板에 나와 때론 가뿐하게 나는 듯 춤을 추다가 구부려서 먹이를 쪼아 보기도 하고 긴 숨을 들이키려는 듯 머리를 들어 하늘을 주시하기도 한다. 돌아서며 나는 듯 서로 마주하고 머리를 들어 부리를 마주치기도 한다. 고운 춤사위를 이어가다 지당판으로 올라가 연통을 쪼아댄다. 연통이 벌어지고 순간 그 속에서 두 어린 무동이 나타나니 학이 소스라치게 놀라 뛰어나간다. 연통 속 어린 무동이 지당판으로 내려오면 또 다른 무희 두 사람과 죽간자竹竿子두 사람이 나와 동서로 나누어 서고 음악이 그치고 죽간자가 구호를 칭한다. 이어 죽간자가 좌우로 나가서고 네 무동은 앞으로 진보하여 서로 마주보기도 하고 돌기도 하면서 사뿐사뿐 춤을 이어 나간다. 학과 무동들의 춤은 각각 ‘학무’, ‘연화대무’로 서로 주고받는 말을 잇듯 연결하여 추는 춤이 바로 ‘학연화대합설무’라는 춤사위의 진수를 보여준다.
왜 학이 등장하는가?
학은 시대와 종교적 이념에 상관없이 유교나 불교, 도교에서도 매우 신성시 여겼던 동물이다. 불교에서는 학이 동물의 업보를 가지고 태어난 새가 아니라 법문을 전하기 위해 아미타불께서 변한 것이라 한다. 도교적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입장에서 보면 학은 신선이 타는 동물 또는 신선자신을 지칭하기도 한다. 유교에서도 학의 고고한 인격과 철학을 높이 숭상하여 기품 있는 선비의 품성을 대표하였다. 그러기에 사자가 서역의 동물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숭상되었던 것에 비하면, 단군신화의 곰 토템을 넘어서 토착적으로 가장 오래 신성화된 영물이 바로 학이 아닌가 싶다. ‘북청사자놀음’에서도 사자의 탈을 쓰고 춤을 추긴 하지만 놀이로서 유희적인 성격이 강한데 비해, 학춤은 학의 생태를 연구하고 학을 모방하는 춤으로 그 모습만으로도 숭상하는 마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왜 궁중무용인가?
학연화대합설무의 악기는 삼현육각으로 편성된다. 학무의 반주음악은 세령산, 삼현도드리, 타령 음악을 사용하고 연화대무에서는 당악계 음악인 보허자步虛子, 삼현도드리, 잦은도드리타령, 잦은타령, 타령으로 모두 궁중음악만으로 이루어진다.
궁중무용은 윗사람(임금)에게 드리는 재주를 뜻하는 정재呈才로 궁중의 의식에 드리는 기예를 뜻한다. 학연화대합설무에서 보이는 학무가 민속의 학춤과는 다르듯, 궁중무용은 절제하는 듯 기품 있는 형식으로 추어지며 연희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궁중무용은 조선 후기 순조 때 황금기라 할 수 있다. 이 무렵은 왕의 진연進宴때마다 새로운 정재를 만들어 바쳤을 정도로 다양한 궁중무용을 만들었다.
궁중무는 유형에 따라 당악무용唐樂舞踊과 향악무용鄕樂舞踊으로 나뉘는데, 당악무용은 고려 문종 때 송宋나라로부터 도입된 춤으로 춤의 시작과 끝을 죽간자竹竿子(무구의 하나, 또는 그것을 든 사람)가 인도하고, 한문으로 된 노래가사를 부른다. 이에 반해 향악무용은 한국 고유의 춤으로 조선세종 이후 체계화되었으며, 춤을 추는 사람이 죽간자의 인도 없이 무대에 등장하여 한글 가사로 된 노래를 부르는 것이 훨씬 자유로운 형식을 띤다.
학무, 한국의 선비정신으로 우뚝 서다
선비들의 관복에는 가슴과 등 문양에 수놓아진 학의 수로써 서열을 구분하는 징표로 삼았다. 학자들이 즐겨 입은 검은 깃으로 두른 흰색 의복은 평소 학과 같이 깨끗한 품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른 심성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학은 특별히 어떠한 종교나 이념적인 체제 안에서도 동요되지 않고, 한국의 풍류도와 같이 때론 복합적인 이념을 아우르면서 민족혼을 표상하는 신화적인 소재임에 틀림없다. 학을 모방한 춤은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와 함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학의 형상을 본따 이상세계를 지향하고 복을 바라는 뜻에서 추어진다. 학춤은 기개와 품위, 관용, 이상향에의 지향을 고고하게 기품 있는 몸짓으로 이야기한다. 신이 인간에게 전해야 하는 바른 정념을 신성한 영물을 통해 들려 주는 얘기가, 음악이 신의 목소리이며 우주의 구현이라고 했던 예술의 태동에서 학춤의 예술성은 선비의 기개가 단연 돋보인다.
글. 김지원 (한국무용가)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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