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15 03:04
1909년 평양 대성학교서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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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평양 대성학교 교과서‘묘가휘집’필사본에 실린‘애국가’. /아트뱅크 제공
면적이 삼천리 인구 이천만/
십삼도(十三道) 각군합(各郡合)이 삼백사십이/
당당한 대제국(大帝國)이 분명하도다.'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이내 말 한마디 자세히 들어라/
공부만 하여도 쓸데없구나/
애국의 열성이 제일이로다/
대한이 독립을 회복하려면/
이 몸이 죽도록 힘써야 되겠네.'('묘가휘집' 수록 '애국가'일부)
일제의 강제 병합 직전인 1909년 평양의 대성학교에서 불리던 애국가 6종이 새로 발굴됐다.
대성학교는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를 널리 보급한 학교다. 고서점 '아트뱅크'의 윤형원 대표는 최근 입수한 '묘가휘집(妙歌彙集)' '창가휘집(唱歌彙集)' '논설(論說)' 등 대성학교 학생 박창식(朴昌植)의 필사본 교과서 10여 종을 14일 본지에 공개했다.
책의 표지에는 ‘대한제국 융희(隆熙) 3년(1909년) 9월’이라 쓰여 있다.
도산 안창호가 1907년 설립했으며 윤치호가 교장을 지낸 대성학교는 일제에 의해 1912년 강제 폐교되기까지 대표적인 민족 사학이었다.
자료를 분석한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여기에 실린 40여 편의 애국 창가 중 6종의 ‘애국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애국 창가 20편을 수록한 ‘창가휘집’은
‘아주동방(亞洲東方) 적은 반도는/
개국된 지 사천년 군주국일세/
단군 기자 조선국으로/
광무(光武) 원년 대한국 태극기로다’
로 시작되는 ‘애국가’ 1편을 실었다. 19편의 애국 창가를 수록한 ‘묘가휘집’에는 ‘애국가’ 4편이 실렸다. 모두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일본이 강탈하는 과정에 있던 국권을 되찾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필사자 박창식은 화신그룹 총수 박흥식의 형으로 추정된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갑 이사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애국가는 금지됐으나, 오히려 단체나 학교마다 여러 종류의 애국가를 부르며 항일 의식을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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