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문경새재 '아리랑비'에 등장한 외국인은?

yellowday 2013. 8. 14. 11:21

 

입력 : 2013.08.14 10:24 | 수정 : 2013.08.14 10:56


	경북 문경시 옛길박물관에 전시된 문경새재 아리랑비./뉴시스
경북 문경시 옛길박물관에 전시된 문경새재 아리랑비./뉴시스
아리랑 가운데 서양 악보(樂譜)로 처음 기록된 문경새재아리랑을 기념하는 비석(碑石)이 건립돼 지난 13일 일반에 공개됐다.
경북 문경시는 13일 문경새재도립공원 내 옛길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문경새재아리랑비’ 제막식을 가졌다.

특이한 것은 가로 3m×세로 2m 크기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아리랑비 앞면에 아리랑을 문서로 기록한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의 얼굴·악보·가사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아리랑비 뒷면에는 건립취지를 남겼는데, 건립취지 비문은 고윤환 문경시장이 짓고 글씨는 이곤 한국서학회 명예회장이 썼다.
앞면에 등장한 호머 헐버트 박사는 미국 선교사로 1886년 내한해 조선말 고종(高宗) 황제의 외교고문으로 활약했으며 육영공원 영어교사,

YMCA 초대회장 등을 지냈다. 그는 1896년 서양식 악보로 문경새재아리랑을 처음 기록해 서양에 소개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헐버트 박사가 펴낸 ‘조선유기’란 잡지에 ‘한국 음악(Korean Vocal Music)’이란 제목으로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오 아라릉 얼싸 배 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란 가사가 영어식으로 표기돼 있다.
문경시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효시이며, 서울과 영남지방을 잇는 관문인 문경새재가 아리랑 고개의 원조(元祖)라는 입장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헐버트 박사가 서양악보로 채록했던 아리랑에 문경새재가 들어가는 것으로 미뤄 경복궁(景福宮) 중건(重建) 당시

가장 많이 불렀던 아리랑이 문경새재 아리랑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헐버트 박사는 1907년 일제의 핍박을 받아 한국에서 쫓겨났다가 86세이던 1949년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8·15 기념식 행사에 참석차

미군 군용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내한했다가 일주일 만에 숨졌다. 그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평생 소원에 따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치됐다. 이번 아리랑비 제막식에는 헐버트 박사의 증손자(曾孫子)인 킴벌 헐버트(34)씨가 참석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