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주빈 메타가 초청… 이스라엘 필과 베토벤 협연
- 공연 전 대기실에서 남편 백건우의 구두를 정성스럽게 손질하는 영화배우 윤정희씨.
◇연습에 빠진 백건우, 남편 구두 닦는 윤정희
29일 예루살렘 극장 공연 30분을 앞두고, 그는 무대 한구석에 놓인 피아노 앞에서 여전히 연습에 매달렸다. "피아노는 장소만 옮겨 놓아도 소리와 음악까지 바뀌는 거야. 생동감 있는 연주를 하려면, 작품이 살아 움직일 때까지 매달려야 해."(백건우)
백건우가 연습하는 동안, 무대 뒤 대기실에 있던 아내 윤정희는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 남편 구두를 닦고, 연주용 연미복을 매만지고 있었다. 스물셋에 영화 '청춘 극장'으로 데뷔해 300여 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스타지만, 남편 연주회에선 말 없이 묵묵히 내조만 해왔다. "아침에 서울서 영화를 촬영하고 저녁에 지방에 내려가 다른 영화를 찍던 시절부터 짐 싸고 푸는 일이라면 이골이 났어. '백건우 비서 노릇'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할 거야."
협주곡 1악장은 피아노 독주로 막이 올랐다. 오케스트라 합주를 이어받는 도입부부터 백건우는 조금씩 가속을 냈다. 속도가 붙으면 연주하는 손도 은근슬쩍 건반을 눙치거나 설렁거리기 쉽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매섭고 단단했다. 1층 객석 뒷자리에 앉은 아내 윤정희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두 손을 포갰다. 오른손 엄지로 묵주의 십자가를 어루만졌다.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심정이 돼. 그의 진심이 청중에게 닿기를 기도하지." '강하게(포르테)'보다 '여리게(피아노)'에서 더 큰 매력을 내뿜는 백건우의 연주는 서정적인 2악장에서 한층 사색적으로 변했다.
- 백건우가 29일 이스라엘 필하모닉(지휘 주빈 메타)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을 협연한 뒤 청중의 박수에 답례하고 있다. /텔아비브=김성현 기자
◇"허세 부리지 않는 고전적 미덕을 갖춘 연주자"
앙코르를 연호하는 청중의 기립박수에 주빈 메타는 백건우의 등을 떠밀었다. 메타는 백건우의 귀에 대고 "슈만을 듣고 싶다"고 속삭였다. 한참 숨을 고르던 그는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 가운데 '아리아'를 연주했다. 메타도 더블베이스 주자 곁에 앉아서 경청했다. 메타는 "허세를 부리기 쉬운 우리 시대에도 백건우는 여전히 고전적 미덕을 갖춘 연주자"라고 했다. 연주회가 끝나자 스위스 출신 관객이 백건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내 평생 들었던 베토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연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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