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한국인인 그녀가 두 팔 활짝 벌려 노래할 때, 프랑스 관객들은 '입을 쩍' 벌리며 '신도'로 변했다

yellowday 2013. 3. 27. 14:41

입력 : 2013.03.27 03:12

['全席 매진' 나윤선 파리 샤틀레극장 콘서트]
조수미도 서는 佛 대표 극장, 객석 대부분 현지인으로 메워
잇단 기립박수에 앙코르 3곡 "영혼을 연주하는 가수"

그녀가 두 팔을 활짝 벌려 노래할 때, 프랑스 관객들은 신흥종교에 홀린 신도들처럼 넋이 나간 채 낮은 탄식만 가까스로 내뱉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 사이의 샤틀레극장(Theatre du Cha telet)에서 열린 한국의 재즈 가수 나윤선(44)의 무대는, 어떤 예술이 유산(遺産)의 자리에 오르는지 유감없이 보여줬다.

25일 밤(현지시각) 열린 나윤선의 단독 무대는 1860년대 지어진 이 오페라하우스의 1650개 좌석을 남김없이 메운 채 시작됐다. 4월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가, 6월엔 소프라노 조수미의 독창회가 열리는 프랑스 최고의 무대다. 나윤선이 지난 12일 내놓은 새 음반 '렌토(Lento)'는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벨기에, 노르웨이 재즈차트 1위에 올랐다. 특히 프랑스 아마존닷컴 음반 순위는 현재 1·2·3위가 모두 나윤선의 앨범이다. 월요일 밤 샤틀레극장의 매진도 이곳에선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는 그녀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를 알지 못합니다." 샤틀레극장 프로그래머의 이런 소개에 이어 나윤선이 무대에 올랐다. 아프리카 악기 칼림바를 홀로 연주하며 첫 곡 '마이 페이버릿 싱스(My Favorite Things)'를 부르자 5층까지 솟은 객석이 서서히 예열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미국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나인인치네일스(Nine Inch Nails)' 노래 '허트(Hurt)'를 재즈로 리메이크해 부르니 극장의 온도와 기압이 동반상승했다. 나인인치네일스가 9인치짜리 대못으로 쾅쾅 박아댔다면, 나윤선은 굵고 묵직한 붓으로 난(蘭)을 치듯이 노래했다. 그녀가 음(音)과 음 사이를 유영하는 사이 관객이 침을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치밀한 정적이 흘렀다.

나윤선의 자작곡 '러멘트(Lament)'의 라이브는 1970년대 프랑스 아트록을 연상케 했다. 느리지만 단호한 그녀의 노래는 오싹할 만큼 초현실적으로 들렸다. 이윽고 그녀의 오랜 파트너이자 스웨덴 출신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가 작곡한 '모멘토 매지코(Momento Magico)'에서 나윤선은 특유의 신경 발작적인 보컬을 터뜨렸다. 겁먹은 병사를 꾸짖는 장수의 목청과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 속 노파(老婆)의 웃음소리까지 빠르게 교차시키는 그녀의 노래는, 이미 음반을 들어 익숙해져 있는 파리지앵들을 얼어붙게 했다. 나윤선은 12기통 수퍼카가 시속 20㎞로 움직이듯 했고 용광로로 촛불 붙이듯 했으며, 전기톱으로 연필 깎듯 노래했다. 프랑스 유력지 '르 피가로'가 "그녀의 노래는 때로 광기 어리고, 언제든 상식을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썼듯이, 나윤선은 노래 한 곡으로 심연(深淵)을 엿보는 것 같은 체험을 선사했다. 왜 유럽이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파리 샤틀레극장을 메운 프랑스 관객들은 나윤선을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세 번의 앙코르가 이어졌다. /파리=포토저널리스트 정상환
이윽고 '아리랑'이 이어졌다. 그녀가 객석을 향해 "한국 분들 오셨느냐"고 물을 만큼 한국인 관객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객석 여기저기서 "여기요!" 하고 가슴 벅차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기타 한 대 반주에 맞춰 부르는 그녀의 아리랑을 들으면서, 악보도 없이 구전(口傳)돼 수많은 종류를 낳은 아리랑이야말로 진짜 재즈이고 즉흥 연주라는 깨달음이 일었다.

나윤선은 광인(狂人)과 여제(女帝)를 오가는 창법을 들려주었으나, 노래와 노래 사이 "메르씨(Merci ·감사합니다)"를 연발할 때는 한없이 수줍어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박수와 "브라보!"를 비롯한 온갖 기성(奇聲)이 샤틀레극장을 뜨겁게 달굴 때, 그녀는 끝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국식으로' 화답했다.

나윤선과 그의 밴드 네 명은 앙코르를 세 곡 하고서야 관객과 헤어질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크리스티앙 토비라 프랑스 법무장관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고, 유명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베르트랑 타베르니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을 보았다. 나윤선의 음악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밤 10시, 극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은 한결같이 달뜬 표정으로 나윤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객 푸아리에르 프랑수아즈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은 악기에 불과해요. 다만 그녀는 그 악기로 영혼을 연주하는 유일한 가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