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74]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yellowday 2011. 4. 5. 21:54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289호)<사진>부여 정림사 오층석탑을 가장 충실히 계승한 백제 탑이다. 높이 8.5m의 제법 큰 규모로 육중한 볼륨감이 있는데 얇은 지붕돌의 경쾌한 느낌은 백제 탑만의 멋이다. 다만 정림사탑에 비하여 약간 둔중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이 탑의 제작시기를 놓고 미술사가들은 7세기 백제설, 8세기 통일신라설, 10세기 고려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 탑의 연대 추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여기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의 내용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1965년 이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사리장치가 두 군데서 발견되었다. 하나는 원래 목탑의 사리공에서 9세기 하대신라 이후에 제작된 금동불상과 청동방울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탑은 고려 초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세운 탑이라는 견해가 나온 것이다.

또 하나는 1층 지붕돌의 사리공에서 아주 아름다운 사리장치가 나왔다. 순금으로 만든 연꽃무늬 사리함과 파란 유리 사리병은 지금도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당시 학자들은 이 사리함을 통일신라 유물로 보고 탑도 통일신라대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왕흥사터와 미륵사 서탑에서 백제의 정교한 사리함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이제는 백제의 유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해졌다.

이 모두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왕궁리 절터는 본래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지으면서 금마로 천도할 계획을 갖고 있을 때 별궁이 있던 자리다. 그러나 천도 계획이 무산되면서 폐궁으로 되고 그 자리에는 절이 지어졌다. 주변에서 나온 '상부대관(上部大官)'이라는 관서명과 '궁사(宮寺)'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편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처음엔 목탑을 지었고 그 자리에 다시 오층석탑을 세우면서 이 아름다운 사리함을 장치하였고, 나말여초를 거치면서 한 차례 수리할 때 이 불상이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경우든 이 왕궁리 오층석탑은 백제풍의 우아한 탑이라는 사실에는 아무 이론이 없다. 특히 멀리서 보는 실루엣은 아주 환상적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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