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9.27 23:09
미술사에는 '과연 이것이 미술인가'를 두고 벌어진 송사가 여럿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공간 속의 새'〈사진〉에 얽힌 재판이다. 추상 미술에 익숙한 현대인이라면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날렵하게 솟아오른 이 청동 조각에서 속도감 있는 새의 비상(飛上)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 전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1926년 미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파리에서 이 작품을 구입해 돌아오면서 면세품인 미술품으로 세관신고를 했다. 그러나 '새'라면 마땅히 부리와 날개, 깃털이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세관원의 눈에 뾰족한 쇳덩이가 미술품으로 보일 리 없었다. 미국 세관은 이를 '주방용기와 병원용품' 항목으로 분류하고 230달러의 관세를 매겼다.
스타이켄은 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술에 대해 보수적인 이들은 이 작품에 대해 "새처럼 보이지 않고, 별로 아름답지 않으며, 작가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므로 미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브랑쿠시는 "평생토록 나는 비상의 본질을 추구했다"고 증언했으며, 스타이켄은 "미술가가 '새'라고 했으니 이것은 새"라 주장했다. 판사는 스타이켄에게 "만일 사냥을 나갔는데 나무 위에 저 물건이 있었다면 '새'라고 여기고 쏘았겠느냐"고 물었다. 당황한 스타이켄은 대답을 못했지만, 어쨌든 재판정은 '새를 연상하기엔 어렵지만 전업작가가 만든 작품이며 보기 좋기 때문에 미술품'이라고 판결하고 스타이켄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간 속의 새'는 미국 법원의 인정을 받은 최초의 추상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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