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희망Ⅱ'
서양 미술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예쁜 여자 비너스, 나쁜 여자 이브,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 그런데 특이하게도
비너스에겐 아들 큐피드가 있고, 이브는 카인과 아벨을 낳았으며, 성모 마리아 역시 늘 아기 예수를 안고 있지만, 미술의 주인공으로
정작 임산부가 등장한 적은 거의 없었다. 여성은 유혹적이거나 혹은 거룩해야 했을 뿐,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자연 그대로의 여체를
드러내는 것은 미술에서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가 만삭이 된 모델을 스튜디오로 불러 '희망 Ⅱ(Hoffnung Ⅱ·사진)'를 완성했을 때,
평론가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부풀어 오른 가슴을 드러낸 채 커다란 배를 한껏 내밀고 서 있는 이 여인에게서 관능적인
매력과 신성한 모성애를 동시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당시의 윤리 기준으로는 결코 양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은 관능적이지도, 신성하지도 않다. 여인은 황금빛 배경을 뒤로하고, 따스한 원색이 화려하게 펼쳐진 문양 속에
파묻힌 채, 배 위에 얹어둔 회색 해골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인의 발치에서 두 팔을 들고 고개를 숙인 세 여인 또한 죽음의 상징이다.
클림트는 이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이 끝없이 반복되는 무심한 자연의 섭리를 드러낸 것이다.
죽음의 공포마저도 매혹적으로 포장했던 클림트는 풍요로운 물질의 향연 속에서 암울한 종말을 상상하던 19세기 말 유럽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러나 죽음 앞에 냉정했던 그도 앞으로 태어날 새 생명 앞에서는 '희망'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서양 美術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32] '이집트로 피신 중의 휴식' (0) | 2013.01.18 |
---|---|
[31] 공간 속의 새 (0) | 2013.01.18 |
[29] 이상적 도시 (0) | 2013.01.18 |
[28] 네페르티티 (0) | 2013.01.18 |
[27] 비야 셀민스, '난로' (0) | 2013.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