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92] 아르킴볼도의 초상화

yellowday 2013. 1. 5. 09:56

입력 : 2011.02.08 23:14

호박, 포도, 복숭아, 곡식의 낟알 등 과일과 채소, 꽃으로 만들어진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계절의 신으로 그려진 합스부르크가(家)의 루돌프 2세(1591년)이다. 꽃·과일과 채소의 종합세트같이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린 화가는 밀라노 태생의 주세페 아르킴볼도(1521~1593)로 이번 겨울에 워싱턴 DC의 국립미술관에서는 그의 전시가 있었다.

아르킴볼도는 처음에는 스테인드글라스나 프레스코화 작업을 하던 화가였다. 후에 그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 2세가 있는 빈으로 가서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의 임무는 왕족들의 초상을 그리는 것 외에 연회에 입는 의상을 디자인하고, 결혼과 같은 모든 축제를 총괄하는,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궁정의 미술감독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잘 해내었고 금전적 보상과 귀족의 칭호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아르킴볼도가 과일·채소·꽃이나 물고기 등을 이용한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563년경, 빈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과일이나 식물도감을 보고 순수한 정물화로 그리다가 점차 얼굴의 특징이 나타나게 수정해 나갔다. 그의 그림은 당대 사람들이 어떤 과일이나 채소를 재배했는지 알 수 있는 정보도 준다. 예를 들면 루돌프 2세의 귀로 그려진 옥수수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이후에야 유럽으로 들어왔고, 가지 역시 15세기에야 아시아에서 수입된 채소였다.

이상적인 인물 초상이 주로 그려지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런 그림들은 당연히 익살스럽고 기발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상과 조화를 추구하던 르네상스의 또 다른 취향은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었다. 당연히 아르킴볼도의 그림들은 인기가 있었고 이 그림을 받은 루돌프 2세 역시 아주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 후 오랫동안 잊힌 화가였던 아르킴볼도를 몇 세기 후 다시 발견한 것은 환상적 형상을 탐구하던 20세기의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로 그는 다다와 초현실주의 미술운동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