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1.04 23:32
영국은 일찍부터 셰익스피어나 밀턴과 같은 대 문호를 배출하였지만 걸출한 화가가 나타난 것은 뒤늦은 19세기였다. J.M.W. 터너(1775~1851)는 풍경화를 독자적인 시각과 기법으로 새롭게 볼 수 있게 한 화가였다. 그는 자연을 대기·물·불과 같은 기본 요소의 대립이나 융합으로 보았고 폭풍우나 대화재, 눈보라와 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현상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색채를 통해 표현하려 하였다. 1840년에 제작한 '노예선'은 거센 파도와 풍랑에 휩쓸리는 난파선을 그린 것으로 형식 면에서 일련의 그의 풍경화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제목에서는 이 작품이 단순한 낭만주의적 풍경화에 그치지 않음을 알려준다.
- '노예선'
'노예선'의 원래 제목은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를 바다에 던지다-폭풍이 다가온다'였다. 그림의 전경에는 쇠사슬에 매인 노예들의 다리나 팔이 거친 파도 속에 휩쓸리고 있고 갈매기, 물고기 떼가 모여들고 있다. 이미 영국은 노예매매를 폐지했지만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를 수송하는 선박들은 아직도 성황을 이뤘다. 터너는 노예선이 병들거나 죽어가는 노예를 짐짝처럼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를 읽고 이 그림을 그렸다. 물에 빠져 죽은 노예들은 '잃어버린 화물'로 보험 처리가 되지만 병에 걸리거나 병으로 죽은 경우에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그림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선박을 덮치기 직전으로 이 선박이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당시 "금잔디색의 하늘과 석류빛 바다의 지나친 광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던 '노예선'에서 저녁노을이 바다를 용광로와 같이 시뻘겋게 물들이는 가운데 배는 태초의 혼란을 상상케 하는 난폭한 폭풍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터너는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화면을 자유분방하게 처리해서 자연의 광폭한 힘과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터너를 높이 평가한 평론가 존 러스킨이 가지고 있었으나 감상하기에 너무 부담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지금은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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