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85] 휴고 판 데르 후스의 '성탄'

yellowday 2013. 1. 5. 09:50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아기 예수 탄생을 그린 작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탄'은 서양의 종교화에서 수없이 많이 다룬 주제이지만 15세기에 플랑드르에서 활약했던 휴고 판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약 1440~1482)의 '성탄'은 구성이나 해석이 아주 특이하다. 당시 브루주의 메디치 은행의 대표였던 이탈리아인 토마소 포티나리는 세 폭 제단화를 주문했는데 '성탄'은 이 '포티나리 제단화'(1476년)의 중앙패널에 그려졌다.

'포티나리 제단화'

그림에서는 마리아, 요셉, 천사들과 양치기들이 가운데 있는 아기 예수를 둘러싸 경배하고 있다. 대부분 축제적인 분위기의 성탄과는 달리 이들 등장인물들은 엄숙하고 무거워 보인다. 각기 크기가 다른 인물들은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아기 예수 역시 마리아의 품에 안기지 않고 홀로 광선에 싸여 바닥에 놓여 있어, 앞으로의 희생을 예감하게 한다.

이 그림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인물들은 언덕에서 양을 치다 성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세 명의 양치기들이다.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을 한 이들은 성가족과 비슷한 크기로 그려졌는데, 호기심과 놀라움에 차 있거나, 막 달려와 숨을 고르는 표정 등이 실제 인물을 보는 듯 사실적이다. 평범한 인물들이 이렇게 세밀하고 실감 나게 그려진 그림은 이 시기에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림에는 또 복잡한 상징물들이 등장한다. 빨간 백합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세 송이의 카네이션은 삼위일체, 일곱 송이의 콜롬바인 꽃은 마리아의 일곱 가지 슬픔을 상징하며, 밀 다발은 베들레헴을, 그리고 배경의 건물 문에 새겨진 다윗을 상징하는 하프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임을 시사한다.

휴고는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수도원에 들어갔고 몇 년 후 정신이상 우울병에 걸려 40세가 조금 넘은 나이에 죽었다. 수도원에 있을 때 그린 것으로 알려진 '포티나리 제단화'에 표현된 예사롭지 않은 비전 역시 이런 개인적인 일련의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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