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84] 고갱의 '신의 아기'

yellowday 2013. 1. 5. 09:49

'달과 육 펜스'라는 서머싯 몸의 소설은 19세기 말 원시적 삶을 찾아 타히티로 떠난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실화를 소재로 한 것이다. 잘나가던 증권 브로커가 화가가 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갔고, 그 후 다시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타히티 섬에 가서 결국 그곳에서 일생을 마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 63일간의 항해 끝에 타히티에 도착한 고갱이 발견한 것은 1880년부터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 버린 타히티가 이미 순수한 원시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타히티인들은 기독교화되어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서양식 옷을 입는 등 유럽식으로 변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도 서양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신의 아기'를 의미하는 '테 타마르 이노 아투아'(1896년)라는 그림에는 타히티 여성이 등장하지만 마구간을 배경으로 하고 후광을 쓴 아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종교화 '성탄'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은 고갱과 같이 살던 파우라가 낳은 아들이 크리스마스 즈음에 죽은 것과 관련해 한편으로 화가 자신 아들의 탄생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침대 뒤에 아기를 안고 있는 후드를 쓴 남성은 고갱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죽음의 영(靈)을 나타낸다.

'테 타마르 이노 아투아'

고갱은 타히티에서 파리의 평론가·화상들과 계속 연락을 하고, 중간에 파리로 돌아와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을 팔려고 했다. 이런 일은 그가 과연 타히티인들과 동화되어 살 생각이 있었는지 의심이 가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00년에 그는 타히티보다 더 오지인 마르키즈 군도(群島)의 히바오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쾌락의집'이라고 새긴 현판을 단 집에 살면서 고갱은 프랑스 총독부 관리와 끊임없이 충돌하고, 가난과 폭음, 그리고 병고에 시달리다 1903년에 외롭게 죽어갔다. 당시로서는 그의 삶이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어떤 점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로 뻗어가던 유럽 제국주의가 낳은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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