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의상에 많이 사용된 짙은 파란색 '울트라마린'은 가장 비싼 안료였다. 이 안료는 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는 '라피즈 라즐리'라는 원석에서 추출되는데, 기착지인 베네치아에서는 다른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벨리니나 티치아노 같은 화가들이 사치스러운 비단, 반짝이는 보석,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등을 풍부하고 신선한 색채로 구사한 것은 이런 고급 안료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 티치아노 작‘페자로 가족과 마돈나’.
안료를 기름에 개어 사용하는 유화는 15세기 유럽에서는 새로 개발된 일종의 '하이테크'였다. 그때까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리던 벽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림들은 템페라 기법을 사용했는데, 템페라란 안료를 계란 노른자와 물에 개어 그리는 방식이었다. 템페라는 정밀하고 선명한 색채 구사가 가능했지만 아주 작은 붓으로 그려야 했다. 그러므로 소품 위주였고 한번 잘못 칠하면 고치기도 어려웠다. 이에 반해 마음대로 색을 섞을 수 있고, 잘못 그리면 마른 뒤 고칠 수 있으며, 광택과 깊은 맛을 주는 유화 물감은 곧 화가들이 가장 즐겨 쓰는 회화 재료가 되었다. 미술의 변화에 재료나 기법의 혁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 후 400년이 지난 19세기의 산업혁명은 유화기법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공장에서 알루미늄 튜브에 담은 물감을 생산해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강렬한 색채의 물감들도 새로 개발되었다. 이제 화가들은 더 이상 화실에서 안료를 빻고 섞을 필요가 없었다. 이후 야외에서 간편한 화구로 그림을 그렸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런 재료의 발전과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세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