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59] 박수근의 나목(裸木)

yellowday 2011. 4. 4. 15:48

국보, 보물은 100년 이상 된 유물을 대상으로 하므로 20세기의 근대문화재는 국가 지정 문화유산으로 될 수 없었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한 것이 등록문화재다. 등록문화재는 50년 이상 된 유물을 대상으로 한다. 18세기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19세기 추사 김정희 작품에 국보 보물이 있듯이 20세기 화가의 작품도 언젠가는 문화재로 될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이에 대비하여 근대미술사학계에 검토 의뢰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국민화가로 칭송되는 박수근도 당연히 들어 있었고 미술사가들은 그의 대작에 속하는 60호(130X97cm) 크기의 '절구질하는 여인'과 '나무와 두 여인'을 꼽고 있다.

박수근‘나무와 여인’

박수근 서거 45주기 유작전(갤러리 현대, 30일까지)에는 마침 '절구질하는 여인'이 출품되어 다시 한 번 면밀히 살펴보니 과연 명화였다. 박수근의 독특한 질감이 이처럼 강렬하게 표현된 것이 없다. 만년의 박수근은 보드라운 화강암 같은 질감에 대상을 정적으로 고착시켰지만 여기서는 마티엘이 강하여 대단히 동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박수근은 역시 소품에 더 익숙해 있었다. 그는 생전에 대작을 할 기회가 적어 소품 속에 자신을 완벽히 표현해 왔다. 박완서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나목'이라는 소설은 6·25 동란 중 밥벌이로 PX에서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손수건에 초상화를 그려주던 박수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은 그가 그린 벌거벗은 나목들은 시들어가는 고목(枯木)이 아니라 모진 추위를 견디며 새봄을 준비하는 겨울 나무였다는 얘기로 끝난다. 전시장에서 박완서 선생을 만나게 되어 소설 속 작품이 어느 것이냐고 물으니 '나무와 여인'(3호)이라고 한다.

박수근 그림에 나오는 서민들의 모습은 하루를 넘긴다는 것 자체가 힘겨웠던 50년 전 우리네 삶의 표정인데 우리는 나목처럼 그것을 견디어냈고 그것을 그린 그림은 어느덧 문화재로 될 정도로 세월이 훌쩍 가버렸다는 얘기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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