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과 봄철 답사길에 국립춘천박물관에 들렀는데 뜻밖에도 '태조 이성계 발원 사리함'이 특별 전시되고 있어 횡재한 기분이었다. 1932년 10월 회양군청 직원들이 내금강면 주민들과 산불 방지를 위한 방화선 개착공사를 하던 중 금강산 월출봉 아래에서 발견한 이 유물들은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의 성공을 기원하는 발원문이 들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명문(銘文)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일괄유물 전체를 전시한 것은 처음이다.
사리함을 아래위로 덮었던 백자사발에는 이성계와 그 지지자들의 비장한 기원문이 새겨져 있다. "신미년(1391) 사월 이성계와 일만 명은 미륵님께서 중생구제를 위해 내려와 주시기를 기원하며 깊은 계곡에서 함께 그릇을 만들어 금강산에 소중히 봉안하면서 발원하노니 이 소원의 확고함은 불조(佛祖)가 증명할 것이다." 발원인즉 미륵하생이지만 소원인즉 쿠데타의 성공이었고 내용인즉 일만 명의 다짐이었다.
또 백자사발 명문에는 방산(方山) 사기장(砂器匠) 심의(沈意)가 만들었다고 밝혀져 있어 양구군 방산면에 있는 여말선초 백자 가마터에서 구워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사발은 제작연대·제작처·제작자를 모두 알 수 있는 한국 도자사의 유일한 유물이기도 하다.
사리함은 금으로 도금한 팔각당 모양의 외호(外壺)와 라마탑 모양의 내호(內壺), 그리고 대롱 형태의 유리사리병 등 삼중구조로 되어 있다. 형태도 아름답고 제작기술도 정교하여 고려 금속공예가 왕조의 마지막 순간에도 빛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사리함에는 모두 3개의 명문이 있는데 발원자는 이성계와 부인 강씨이고, 시주자는 동지밀직 황희석, 낙안군부인 김씨 등 남녀 11명이며, 만든 사람 3명 중에는 한양 천도 때 궁궐 건축을 도맡았던 박자청(朴子靑)의 이름이 들어 있다. 한국미술사에 이처럼 많은 스토리텔링이 들어 있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어서 모처럼 젊은 미술사학도들과 유익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유물은 7월 말까지 특별전 형식으로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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