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31]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yellowday 2011. 4. 3. 18:29

박물관에 가면 '원(原)삼국시대'라는 표기가 있다. 이것이 한때는 국회 문방위에서 문제로 된 적이 있다. 왜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삼한시대라는 표기는 없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바도 없는 '원삼국시대'라는 말이 나와 학생과 일반인들을 혼동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한 문제제기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고고학, 미술사학의 고민이다.

원삼국시대란 기원전 1세기부터 3세기까지를 일컫는다. 이 시기 한반도는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이 태동하여 바야흐로 고대국가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북쪽에는 부여·동예·옥저가, 남쪽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또 낙동강 지역에서는 가야가 성장한 까닭에 삼한시대도, 삼국시대 초기도 아닌 셈이다. 그래서 고 김원용 선생은 삼국 정립의 기원(起原·proto-type) 단계라는 의미로 '원(原)삼국'이라는 시대개념을 제시하였다.

원삼국시대의 특징을 보면 청동기시대의 상징이던 고인돌이 사라지고 다양한 묘제(墓制)가 공존하였다. 인간의 생활 습관 중 가장 보수적인 장묘제도가 바뀌었다는 것은 사실상 생활문화가 다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철기시대답게 무쇠로 만든 무기, 농기구, 마구(馬具)가 사용되었다. 철을 화폐로 사용한 듯 판상철부(板狀鐵斧)라는 도끼모양의 철괴도 있다. 생활문화도 풍부해져 창원 다호리(茶戶里) 유적에서는 각종 칠기와 붓이 나왔고, 전라도 광주 신창동 유적과 경산 임당동 유적에서는 현악기도 출토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문화의 체질적인 변화는 무엇보다도 토기에 뚜렷이 나타났다. 야철술의 에너지 활용 기술을 토기 제작에 적용시킨 굴가마[登窯]는 1000도까지 올릴 수 있어 토기는 견고해졌다. 이것이 원삼국시대 와질(瓦質)토기라는 회색 연질(軟質)토기이며 나중에는 더 발전하여 경질(硬質)의 가야토기, 신라토기에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변화는 AD 300년 무렵까지 지속되다가 삼국이 명실 공히 고대국가의 모습을 갖추면서 문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그 과정을 원삼국시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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