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여전히 보존문제로 관계자들을 고민 속에 빠트리고 있다. 울산시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이 암각화는 1971년 태화강 상류에 식수를 위한 사연댐을 만들게 되자 수몰지구의 문화재를 조사하던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높이 4m, 폭 8m의 암벽에 고래·사슴·호랑이·멧돼지 등 동물 모습과 활을 쏘는 사람 등 인간 모습이 무려 231점이나 새겨져 있다. 이는 어로(漁撈)와 수렵(狩獵)으로 삶을 꾸려갔던 선사시대인들이 풍요(豊饒)를 기원하며 새긴 것으로 특히 46점에 달하는 고래 그림은 많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사연댐은 예정대로 만들어져 암각화는 수몰된 지 35년이나 되었고 어쩌다 이른 봄 갈수기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면 그 보존상태가 나빠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댐을 다른 곳에 만들고 수몰로부터 구제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게 보통 일이겠는가.
발견 당시 미술사가와 고고학자들은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시기를 기원전 4세기 청동기시대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최근 지리학·지질학·식품영양학 등 자연과학자들은 훨씬 시대를 올려보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 논거는 고래 그림이 단지 풍부한 식량감의 상징적 도상이 아니라 이곳이 실제로 고래잡이에 적합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선사시대 울산만의 자연환경은 바닷물이 태화강 중류까지 들어와 300m에 달하는 내만(內灣)이 형성되어 있어 지리학에서는 고울산만(古蔚山灣)으로 불린다. 울산은 예나 지금이나 고래가 자주 나타나는 곳으로 먹이를 따라, 또는 얕은 바다를 찾아 고울산만으로 들어온 고래를 수심이 더 얕은 곳으로 몰아 '좌초'시킴으로써 선사인들은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암각화에 그려진 망보는 사람, 여러 명이 탄 배, 그물, 어책(漁柵), 작살에 찍힌 고래 등은 실제 사냥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는 먹고 버린 고래뼈가 상당수 발견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렇게 고래잡이가 가능했던 지질학적 시기는 6000년 전부터 3000년 전 사이라고 하니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한편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 동물학회에서 고래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연구는 이렇게 점점 깊어지고 있는데 암각화는 날로 병들어 가고 있다. 무슨 대책이 없을까.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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