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石의詩 모음

어리석은 메기/ 백석

yellowday 2012. 11. 14. 00:27

어리석은 메기/ 백석

어느 산골 조그만 강에 메기 한 마리 살고 있었네.

넓적한 대가리 왁살스럽고 뚝 뻗친 수염 위엄이 있어,
모래지, 비들치 잔고기들이 그 앞에선 슬슬 구멍만 찾았네.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이 메기에게는 을씨년스럽고,
산골 강에 사는 잔고기들이 메기에게는 심차지 않았네.

이런 메기는그 언제나 용이 돼서 하늘로 오르고만 싶었네.

하루는 이 메기 꿈을 꾸었네―

조그만 강을 자꾸만 내려가 큰 강 되고,크나 큰 강을
자꾸만 내려가 넓은 바다 되더니,
넓은 바다 설레는 물속에서
푸른 실, 붉은 실 입에 물고 하늘로 둥둥높이 올랐네.

그러자 꿈을 깬 메기의 생각엔―이것은 분명 용이 될 꿈.

메기는 너무도 기쁘고 기뻐 그 길로 강물을 내려갔네.

옆도 뒤도 돌 볼 짬 없이 급히도 급히도 헤엄쳐 갔네.

옆에서 참게가 어디 가나 물으면
메기는 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용이 되려 가네) 대답하였네.

뒤에서 뱀장어가 어디 가나 물으면 메기는 눈 돌이켜 보지도 않고
용이 되려 가네) 대답하였네.

작은 강을 자꾸만 내려가 큰 강 되고,

큰 강을 자꾸만 내려가 넓은 바다 나설 때 늙은 숭어 한 마리
메기 앞을 막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말 물었네.

메기는 장한 듯 대답하는 말―(용이 되려 가네)

늙은 숭어 웃으며 다시 하는 말―이렇듯 늙은 나도 못 되는 용,
젊은 메기 네가 어떻게 된담!)

이 말 듣자 메기는 꿈 이야기 하였네―그 좋은 꿈 이야기 늘어 놓았네.

그러자 늙은 숭어 껄걸 웃어 하는 말―(그것은 다름 아닌 낚시에 걸릴 꿈.)

이 말에 메기는 가슴이 철렁,그러자 얼른 눈 둘러보니 실 같이 가느단 빨간 지렁이
웬일인가 제 옆으로 흘러 가누나.

작은 강, 큰 강 헤엄쳐 내리며 배도 출출히고픈 김이라
용도 꿈도 낚시도 다 잊은 메기
지렁이도 낚싯줄도 덥석 물었네.

꿈에 물은 붉은 실 붉은 지렁이,꿈에 물은 푸른 실 푸른 낚싯줄,
꿈에 둥둥 하늘로 오른 그대로
낚싯줄에 둥둥 달려 메기 올랐네.

어리석고 헛된 꿈을 믿어
용이 되려 바다로 내려 왔다가
낚시에 걸려 죽게 된 메기 눈에 암암
자꾸만 보이는 것은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 그 강에 사는
작은 고기들― 산골에 흐르는
조그만 강, 그 강에 사는
작은 고기들― 이것들이 차마
잊히지 않아 메기는 자꾸만
몸부림 쳤네 낚시를 벗어 나려 푸덕거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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