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의 개화(改火)
엊그제(5일)가 입하(立夏)였다. 현대사회에서 이날의 의미란 그저 달력상 여름으로 들어섰구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긴밀히 호흡을 맞추며 살았던 조선왕조 시대에는 절기가 바뀌는 입춘·입하·입추·입동마다 개화(改火)라는 의식이 있었다.
옛 가정에서 부엌의 불씨는 절대로 꺼뜨려서는 안 됐는데, 하지만 이것을 그냥 오래 두고 바꾸지 않으면 불꽃에 양기(陽氣)가 지나쳐 거세게 이글거려 돌림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절기마다 바꾸어 주었다. 이를 개화라 하며 새 불씨는 나라에서 직접 지핀 국화(國火)를 각 가정으로 내려 보냈다.
태종 6년(1406)에 시행된 이 개화령(改火令)은 성종 2년(1471)에 더욱 강화되어 궁궐의 병조(兵曹)에서 새 불씨를 만들어 한성부로 내려 보내고, 고을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집집마다 나누어주되 이를 어기는 자는 벌을 주게 했다. 새 불씨를 만드는 방법은 찬수(鑽燧)라 하여 나무를 비벼 불씨를 일으켰다. 이때 어떤 나무를 쓰는가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맞추어 계절마다 달리했다.
봄의 빛깔은 청(靑)색이므로 푸른빛을 띠는 버드나무[柳]판에 구멍을 내고 느릅나무[楡] 막대기로 비벼 불씨를 일으켰다. 여름은 적(赤)색이므로 붉은 살구나무[杏]와 대추나무[棗]를, 가을은 백(白)색이므로 하얀 참나무[�k]와 산유자나무[楢]를, 겨울은 흑(黑)색이므로 검은 박달나무[檀]와 느티나무[槐]를 사용했다. 그리고 땅의 기운이 왕성한 늦여름 토왕일(土旺日·입추 전 18일간)에는 중앙을 상징하는 황(黃)색에 맞추어 노란빛을 띠는 구지뽕나무와 뽕나무[桑]를 이용했다.
어찌 보면 형식에 치우친 번거로운 일로 비칠지 모르나 자연의 섭리를 국가가 앞장서서 받들어 백성으로 하여금 대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삶의 조건을 그때마다 확인시켜 주면서 이제 절기가 바뀌고 있음을 생활 속에서 실감케 하는 치국(治國)과 위민(爲民)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창덕궁 돈화문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찬수개화를 했던 내병조(內兵曹)이다. 궁궐 답사 때는 모름지기 건물 자체보다도 거기에서 행해졌던 의미 있는 일들을 떠올릴 때 더욱 느낌이 커지는 법이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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