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06 22:30
6·25전쟁의 아픔을 알리는 140여장의 생생한 흑백사진이 오가는 이의 눈길을 끈다. 폭격에 부모를 잃고 길에서 우는 어린 소녀, 넝마 옷을 입은 채
미군 쌀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 달구지와 지게에 아이와 노인, 솥단지를 싣고 눈길을 끝없이 가는 피란 행렬….
▶가을비가 심술궂게 내린 5일 오후 한 노신사가 한 장의 사진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1952년 포항제일교회 부설 고아원에서
미군 병사 두 명이 본토에서 미군 가족들이 보내온 옷가지를 전달하는 사진이다. 미군을 지켜보는 다섯 명의 고아들은 어른 옷을 줄인 듯
통 넓은 바지를 입었다. 신사는 그중 하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아이를 가리킨다. "이게 접니다." 그의 표정에 한없는 감회가 묻어났다.
▶예순아홉 살 송유진씨는 60년 전 포항의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후배로부터 "사진 속 아이가 형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광화문에 나왔다.
그는 전쟁 초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에게 갔다가 이듬해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고아원에 맡겨졌다. "옷 한 벌로 사철 지내야 했고
반찬 하나 없는 맨밥이어도 하루 세 끼는 꿈도 못 꾸었지요. 웬 이가 그리 많은지 DDT도 자주 뿌렸습니다.
" 송씨는 종업원 16명을 둔 가전제품 제조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어려움을 딛고 오늘에 이른 저 자신과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알고 보니 고인(故人)은 흥남 철수 때 1만4000명을 피란시킨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 레너드 라루였다. 감명을 받은 안씨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뒤져 6·25가 할퀴고 간 상처,
미국과 우방의 따뜻한 도움을 증언하는 사진 2만여장을 찾아냈다.▶안씨가 2005년부터 서울과 지방, 하와이를 옮겨다니며 6·25 사진전을 연 기간은 3000일이 넘는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시청 앞에 전시된 사진들을 시위대가 마구 불태웠다. 안씨는 "6·25의 진실을 알면 좌(左)고 우(右)고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세 권짜리 사진집을 만들었다. 전국 학교와 군부대가 이 사진집을 살아 있는 현대사 교과서로 삼도록 하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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