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술사학과 4학년 현장수업으로 경복궁에 다녀왔다. 경복궁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보통 품계석(品階石) 따라 난 어도(御道)를 밟고 곧장 근정전(勤政殿) 월대(月臺)로 오르지만, 나는 학생들을 근정문 행각(行閣) 오른쪽 모서리로 모이게 한다.
왜냐하면 거기가 바로 근정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그 언저리에 '사진 잘 나오는 곳'이라는 푯말이라도 하나 새겨놓고 싶은 지점이다. 듬직하고 가지런한 2단 석축(石築)의 월대, 높이 34m의 장엄한 근정전 중층 건물, 그리고 팔작지붕이 연출해낸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멀찍이 비껴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을 향해 빈 하늘로 뻗어나가는 모습은 가히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할 만하다.
거기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근정전의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1395년(태조 4) 경복궁과 종묘 그리고 서울성곽이 완성되자 태조대왕은 정도전(鄭道傳)에게 궁궐의 모든 전각(殿閣)과 문루(門樓)의 이름을 짓게 했다.
이에 정도전은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임금의 상징적 공간인 이곳을 근정전이라 이름짓고는 그 뜻을 풀이한 글을 따로 바쳤다.('태조실록' 4년 10월 7일)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폐(廢)하게 됨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낸 정도전은 이어 '서경(書經)'의 말을 이끌어 부지런함의 미덕을 강조하고, 또 그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그러고 나서 뼈 있는 충언을 덧붙였다. "그러나 임금으로서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무엇에 부지런해야 하는지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탈스러움에 흘러 보잘것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도전은 옛 현인(賢人)의 자세를 이끌어 이렇게 충고했다. "아침엔 정무를 보고[聽政], 낮에는 사람을 만나 보고[訪問], 저녁에는 지시할 사항을 다듬고[修令],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여야[安身] 하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그리고도 무엇인가 못 미더웠던지 정도전은 한마디를 더했다. "부디 어진 이를 찾는 데 부지런하시고, 어진 이를 쓰는 데는 빨리 하십시오." 근정전에는 그런 깊은 뜻이 서려 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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