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드러나지 않지만… '작정한 듯' 멋진 집

yellowday 2012. 10. 10. 14:54

노부부 위해 지은 집서울 성북동 '현덕재'
1층, 은퇴 후 수입원 될 상가 3개 층은 3代가 함께 살 공간
위에서 내려다보면 'ㄷ'자형, 가운데 사각형으로 비운 中庭
패턴형 벽·계단 모양의 창… 디테일 살린 디자인이 매력

건축가 오세민씨
'현덕(玄德)'은 '속 깊이 간직하여 드러내지 않는 덕'을 뜻하는 단어다. 이 말을 빌려 이름을 지은 서울 성북동의 주택 '현덕재'는 디자인에 꼼꼼하게 신경을 썼지만 이름처럼 그 멋을 과장되게 내보이지 않는 집이다. 건축가 오세민(방바이민 대표)씨가 은퇴한 노부부의 의뢰를 받고 설계한 주택으로, 상가 1개 층과 주택 3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올해 서울시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건물의 외장재는 대부분 노출 콘크리트다. 벽면 전체를 하나의 균일한 면으로 처리하지 않고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모양처럼 독특한 질감을 연출했다. 최근 이 집에서 만난 오 대표는 "위압적인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지 않도록 거푸집에 송판을 덧대 패턴처럼 활용했다"며 "벽면이 작은 단위가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처럼 보이도록 했다"고 했다.

결혼해서 자녀를 둔 아들이 건축주 부부와 함께 살게 될 때까지 고려해서 실내는 3대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건축가는 "주택 부분 3개 층 가운데 2층에 식당, 거실을 배치했다"며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을 중간에 배치해 방 같은 개별적 공간을 분리시키면서도 식구들이 모이기 편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건물 앞뒤를 지나는 두 도로의 높이 차이가 8m였던 대지의 제약 조건도 주거용 1·2층의 공간을 분리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1층과 2층에서 각각 두 도로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따로 만들어 두 층의 동선을 분리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오세민씨가 설계한 서울 성북동 현덕재(玄德齋). 지층(반지하처럼 입구 부분만 도로를 향해 열린 부분)의 상가 1개 층과 주거용 3개 층으로 구성된다. 외장재는 콘크리트를 쓰고 부분적으로 어두운 색의 목재를 사용해 변화를 줬다. /사진가 윤준환
건물의 바닥 면적은 85㎡(약 25평), 지상층 연면적은 255㎡(약 77평)로 공사비는 평당 7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건물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ㄷ자 모양이다. 길쭉한 직사각형 대지에 들어서는 집의 중간 부분을 사각형으로 비워 중정(中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건축주 희망에 따라 중정을 만들었어요. 외부와 접하는 면이 넓어지는 만큼 빛이 잘 들어옵니다. 중정 부분에 사용한 유리창을 통해 반대편이 건너다보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 있어도 엄격하게 단절돼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옥상에서 내려다본 중정. 각 층 벽면에 유리를 써서 시선을 가리지 않게 했다(왼쪽). 거실에서 올려다본 3층 다목적실. 네 면 중 세 면은 벽에서 떨어져 있어 공중에 매달린 듯한 느낌을 준다(가운데). 계단에는 유리를 사선으로 이어 붙여 경사진 디테일을 살렸다.
건축가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 집을 '멋진 집'으로 만들었다. 오 대표는 "건축주가 상가를 임대해 은퇴 후 수입원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유동인구가 적은 주택가에서 임대가 잘 되려면 주변의 랜드마크가 될 정도로 건물의 디자인이 뛰어나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고 했다. "상가에는 지금 고급 헤어숍이 들어와 있는데, 가게 주인이 공사 중인 건물을 보고 먼저 임대를 요청해왔다"는 설명이다.

건축주 부부는 "이 집이 지어진 뒤로 이웃집에서 담장 위의 쇠창살을 없애고, 담장도 새로 칠하는 등 주변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오 대표가 말을 받았다. "담장도 낮추고 일부 벽은 투명한 소재를 써서 밖에서도 집이 잘 보이도록 했어요. 좋은 건축은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지역을 변화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