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8] 광기와 폭력 뒤섞인 '현실 세계'… 이승과 저승 가르는 江 위의 단테

yellowday 2012. 9. 20. 17:26

입력 : 2012.09.18 22:45

낭만주의 미술의 시대를 연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1798~1863)가 1822년, 처음 파리 살롱에 전시했던 작품이 바로 '단테의 조각배'다. 들라크루아는 중세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神曲)' 중에서 단테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아 지옥을 여행하는 장면을 그렸다. 화면을 가득 메운 과장된 인체와 웅장한 색채에서는 미켈란젤로와 루벤스 같은 과거 거장(巨匠)들의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마음을 세차게 뒤흔드는 감정은 들라크루아만의 것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태운 배는 지금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강을 건너고 있다. 붉은 두건을 쓰고 요동치는 배 위에 간신히 서서 불타오르는 도시를 뒤돌아보며 몸을 떠는 왼쪽 사람이 단테이다. 그 오른쪽에서 단호한 자세로 단테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바로 베르길리우스다. 다시 그 오른편에 서서 굳세게 노를 젓는 사공의 뒷모습과 그의 몸을 휘감고 나부끼는 푸른 옷은 그들이 탄 배가 얼마나 강한 역풍을 거스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외젠 들라크루아 '단테의 조각배' - 1822년, 캔버스에 유채, 189×246㎝,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그러나 배를 흔드는 건 바람뿐이 아니다. 지상에서 음란과 오만과 탐욕에 젖어 온갖 죄(罪)를 짓고 지옥으로 떨어진 저주받은 영혼들이 뱃길을 가로막았다. 조금의 희망도 허락되지 않는 이곳에서 영원히 계속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이 중에는 절망에 몸을 맡기고 가라앉는 영혼이 있는가 하면, 광기 어린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짓밟으며 필사적으로 배 위로 올라타려는 영혼도 있다.

단테는 광기와 폭력, 공포와 혐오가 뒤섞인 지옥의 악다구니판에서 현실을 보았다. 그 어느 시대나 지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단테에게는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는 없는 존재, 즉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길을 열어주는 베르길리우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