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6] '사랑의 神'을 흥정하는 귀부인… "나는 쾌락을 좇는다, 우아하게"

yellowday 2012. 9. 5. 00:35

입력 : 2012.09.04 22:56

웅장한 대저택,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향로 앞에서 우아한 귀부인이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장사꾼이 꺼내 놓는 물건을 보고 있다. 장사꾼이 파는 물건은 포동포동한 몸에 앙증맞은 날개를 단 사내아이들이다. 바구니 속의 한 아기는 잠들었고, 그중 하나가 날개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귀부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강아지 분양하듯 팔려나가는 이 아기는 '사랑의 신(神)' 큐피드이다. 그림 속 장면은 적당한 연애 상대를 구하기 위해 포주를 불러 흥정하고 있는 귀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화단(畵壇)에 신고전주의를 유행시킨 화가 조제프 마리 비앙(Joseph Marie Vien·1716~1809)은 이처럼 고상한 그림 속에 향락적인 주제를 세련되게 숨겨 두었다. 이 그림은 원래 서기 1세기 무렵, 고대 로마의 화려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화산재에 묻혀 있던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벽화를 모방한 것이다. 쾌락을 좇으면서도 겉으로는 고귀하게 보이기를 원했던 귀족들 사이에서 '큐피드 장사꾼'은 큰 인기를 얻었다.

비앙 '큐피드 장사꾼' - 1763년, 캔버스에 유채, 117×140㎝, 프랑스 퐁텐블로 국립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경호대장이었던 브리삭 공작이 구입해, 애인인 뒤바리 부인에게 선물했다. 뒤바리는 사실 루이 15세의 정부(情婦)로 더 유명했다. 그러나 공작과 부인의 사랑놀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의 성난 군중은 브리삭 공작을 처참하게 죽여 목을 잘랐고, 그 머리를 뒤바리의 집 안으로 던져넣었다. 뒤바리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그러나 왕실에 충실했던 화가, 비앙은 용케 대혁명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았고, 천수(天壽)를 누리고 죽은 뒤에는 파리의 국립묘지 팡테옹에 안장되는 영예를 누린 유일한 화가가 되었다. 큐피드를 사고팔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을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