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7] 나는 뛰어내린다, 육체의 '탈옥'을 위해

yellowday 2012. 9. 12. 05:51

입력 : 2012.09.11 22:36

슝크·켄더‘허공으로의 도약’- 1960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25.9×20㎝,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랑스 파리의 평범한 골목길. 건물 2층에서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뛰어내린다. 충격적인 이 사진의 주인공은 1950년대의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Yves Klein·1928~1962)이다. 물론 그가 실제로 2층에서 뛰어내린 건 아니다. 사진작가인 해리 슝크(Harry Shunk·1924~2006)와 자노스 켄더(Janos Kender·1937~1983)는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 클랭과 골목길 사진을 따로 찍어 오려붙이고, 그 사진을 재촬영하여 마치 진짜 같은 합성 사진을 만들어냈다.

온몸에 파란 물감칠을 한 누드 모델들이 캔버스 위에 엎드려 몸을 끌고 다니게 하는 것으로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등 파격적인 작업 방식을 고수했던 클랭에게 '허공'이란 '문화'의 이름으로 억눌렀던 육체적 감각을 되찾을 수 있는 해탈의 공간이었다. '허공으로의 도약'은 이처럼 자유분방한 실험정신을 추구했던 20세기 전위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었던 슝크와 켄더는 동성(同性) 연인이자 동업자였다. 그러나 1970년 두 사람의 결별 이후 슝크는 외부와 단절한 채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두문불출하다 2006년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슝크의 아파트는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문을 열 수도 없었는데, 그 속에서 이브 클랭은 물론 앤디 워홀과 크리스토 등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버려진 슝크의 '쓰레기'를 별생각 없이 보관했던 아파트 청소부는 그 안에서 건진 미술품 덕에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슝크는 그 물건들 속에 거꾸로 처박혀 발목만 내놓은 채 죽어있었다고 한다. 연인이 떠난 빈자리를 물건으로 채워보려다 결국 채워지지 않는 마지막 빈자리, 그 '허공'으로 몸을 던졌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