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휴가철 책 읽기

yellowday 2012. 7. 23. 18:02

입력 : 2012.07.22 23:07

백악관은 해마다 대통령이 여름 휴가철에 읽는 책 목록을 발표한다. 2006년엔 부시 대통령이 크로퍼드 목장에서 휴가를 즐기며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읽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방인'은 읽기는 쉽지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소설이다. 뉴욕타임스는 칼럼에서 "이 책이 어떻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반(反)지성 대통령' 손에 들어갔을까"라고 조롱했다. 반면 문학청년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여름철 책 읽기는 늘 주목받는다. 2년 전 여름 오바마가 프랜즌의 소설 '자유'를 읽고 "대단하다"고 했더니 이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다.

프랑스인들은 얼마 전 설문조사에서 한 해 평균 책 열한 권을 읽고 그중 세 권을 여름 휴가철에 뗀다고 답했다. 추리소설이 17%로 으뜸이고 스릴러와 로맨스 소설이 10%씩을 차지했다. 책 읽기 덕분에 여름철 TV 시청시간은 평소 4시간 10분에서 한 시간 짧아진다. 인터넷 접속도 한 시간 줄어 2시간 40분에 그친다. 응답자 52%는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 도는 소문을 듣고 책을 고른다고 했다.

▶우리도 여름철엔 책 판매가 늘어난다. 대기업 경제연구소가 CEO에게 추천하는 책일수록 날개 돋친 듯 팔린다. 2005년 7월 삼성경제연구소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탐독했다는 책 '생각의 탄생'을 휴가 때 읽을 책으로 골랐다. 이 책은 455쪽이나 되고 값도 2만5000원이었지만 15만부 넘게 팔렸다. 출판사 측은 많이 나가야 5000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던 책이다. 출판계에선 '삼성 파워'가 여름 독서시장까지 휘어잡은 사례로 꼽힌다.

▶올여름에도 삼성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CEO가 읽어야 할 책'을 골라 발표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에 '대중의 직관'을 비롯해 사회 분위기를 따지자는 경제경영서가 많다. 이 책들은 전문가가 내놓은 지식과 정보 못지않게 대중의 생각을 중시해서 경영전략을 짜려는 흐름도 반영하고 있다. 상생과 공존의 미래를 내다본 '3차 산업혁명', 전쟁에서 교훈을 얻자는 인문학 책 '십자군 이야기'도 들어 있다.

▶우리 직장인의 여름철 책 읽기는 너무 실용과 실리만 따진다는 느낌이 든다. 휴가 중에도 일거리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듯,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책만 골라 읽으려 한다. 나중에 꼭 써먹을 요량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이다. 책 속에 있다는 길이 모두 유용(有用)하기만 한 건 아니다. 휴가철이 아니면 평소 쓸모없어 보였던 소설이나 예술서를 언제 집어들겠는가. 꽉 막혔던 생각의 숨통이 트여, 세상에서 크게 쓰일 아이디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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