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입력 : 2012.07.20 22:59

반 고흐는 잠 못 이룰 때면 강심제 캠퍼액을 담요와 베개에 뿌리고 살갗에도 발랐다. 독특한 냄새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캠퍼액은 물감 원료 테레빈유와 냄새가 비슷했다. 고흐는 갈수록 캠퍼액에 중독됐고 결국 귀를 잘랐다. 매릴린 먼로는 주기적으로 감정이 불안해질 때마다 수면제를 끼고 살았다. 친구가 하루 15시간을 잔다고 자랑하자 먼로는 얼마나 부러웠던지 불같이 화를 냈다. 가수 마돈나는 친오빠가 "넌 명예욕과 돈 욕심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하자 "난 신경질 일벌레야. 시집도 못 가고 있잖아"라고 했다.

▶링컨도 잠을 못 이뤄 '한밤중 산책가'로 유명했다. 고흐·먼로·마돈나·링컨은 한 웹사이트가 뽑은 '불면증 환자 10걸'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 10만명당 불면증 환자는 대개 그 나라 개인소득에 비례한다. 수면장애는 서유럽·북미·호주·일본에 많다. 러시아가 그다음이고 아시아 사람들은 잘 자는 편이다. 악몽을 꿀까봐, 혹은 주변 상황이 위험한데 잠에 빠질까봐 겁을 내는 '수면 공포' 환자도 유럽·북미에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4년 사이 불면증 환자가 한 해 16.7%씩 늘었다고 발표했다. 잠을 못 자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가 작년에 38만명을 넘어섰다.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고 50대 이상이 3분의 2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8년 불면증 치료로 보험급여를 받은 환자가 3년 동안 60%가량 늘었다고 집계했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 중에 불면증 환자 비율도 40%를 넘나들었다. 그때도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 같은 사회적 원인이 꼽혔다.

▶영국도 불황이 몰아친 지난 4년 수면제 처방이 해마다 17%씩 늘었다. 한 해 어른 세 명에 한 명꼴로 처방을 받아 900억원어치가 팔렸다. 역시 실직과 빚, 비관적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 한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은 돈 걱정, 일자리 걱정 때문에 미국인 30%쯤이 잠을 못 잔다고 보고했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을 뺏기면 물론 잠을 못 자겠지만 "곧 그럴지 모른다"는 걱정만으로도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총리 시절 대처는 하루 네 시간 넘게 잔 적이 없다. 좀 더 자라고 권하는 측근들에게 "겁쟁이들이나 자라고 해!" 하면서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일감이 없어 잠 못 드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기업 임원들도 일감이 줄까봐 61%가 밤잠을 설친다는 조사가 있다. 불면증 문제는 국가 정책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이 공짜로 뭘 해주겠다고 약속하면 오히려 걱정만 끼친다. 차라리 "잘 자게 해드리겠다"고 하면 훨씬 와닿을 것 같다. 잠이 보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