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7.05 22:47
진실을 찾아 메마른 땅 위를 방황하노라
미화(美貨) 1달러짜리 지폐의 뒤쪽에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눈 하나가 붙어있는 문양이 있다.
세상 만물을 꿰뚫어보는 절대자의 눈을 상징하는 이 '섭리(攝理)의 눈(Eye of Providence)'은 고대 문명으로부터 전해오는
진리의 상징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상징주의 미술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1840~1916)의 어두운 그림 속에서 이 눈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는 천상(天上)의 신(神)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 메마른 땅 위를 방황하는 우울한 인간의 눈이다.
눈구멍에서 빠져나와 속눈썹만 남기고 꺼풀을 벗은 채 연약하기 그지없는 각막을 다 드러낸 동그란 눈알이 허공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떠다닌다.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한 그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어딘가 안쓰럽고 애달프다.
- 르동 '무한을 향해 떠오르는 이상한 풍선 같은 눈'… 1878년, 종이에 목탄과 분필, 42.2×33.3㎝,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주로 목탄과 석판화를 이용해서 검은 색조로 마치 악몽에나 나올법한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르동은 이 그림을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에게 바쳤다.
포는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갈까마귀' 등의 작품을 통해 엽기적 살인, 광기 어린 복수, 분열된 자아가 얽힌
공포스럽고도 침울한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였다. 사실 포의 실제 삶은 그의 소설보다 더 잔인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평생을 빈곤과 우울, 마약과 음주벽에 시달렸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부인마저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고통받다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포는 그 5년 후, 마흔이 되던 해에 길거리에서 의식불명으로 쓰러진 채 발견된 후
병원으로 실려가 외롭게 죽었다.
르동은 포의 작품을 그대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생(生)의 의미를 찾아 홀로 분투하는 쓸쓸한 눈은 살아생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저주받은 천재' 포에게 르동이 바치는 상징적 초상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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