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68] 감격의 포옹 한쪽엔 불만 어린 長男이

yellowday 2012. 6. 27. 06:20

입력 : 2012.06.26 22:36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1606~1669)는 화가로서의 성공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어린 자식들에 뒤이어 아내마저 죽고, 연인과 불화를 겪으면서 파산을 맞이했던 것이다. '돌아온 탕자'는 그 쓸쓸했던 말년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신(神)의 사랑과 용서의 깊이를 설명하기 위해 했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어떤 부유한 노인의 두 아들 중 작은아들이 미리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간 후,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거지보다 못한 꼴이 되어 다시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나가 그를 끌어안으며 하인들에게 성대한 잔치를 명한다. 아들이 무슨 짓을 했든, 아버지는 다만 잃은 줄 알았던 자식을 되찾아 기뻤을 뿐이다.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 1661~1669년경, 캔버스에 유채, 262×205㎝,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렘브란트는 이처럼 극적인 만남과 강렬한 용서의 순간을 오히려 한없이 고요한 몸놀림과 온화한 빛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붉은빛은 그리움에 짓무른 아버지의 눈가, 이미 늙어 뻣뻣해진 두 팔로 감싸 안은 아들의 초라한 등과 누더기 신발, 부르튼 발바닥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눈길을 끈다. 오른쪽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큰아들이다. 한 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성실하기만 했던 그는 문제아 동생을 그토록 반기는 아버지의 처사에 깊이 상심했다. 렘브란트는 한때 사치를 만끽한 '철부지 탕자'였지만 말년에는 '억울한 큰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마도 곧 돌아서서 큰아들도 따뜻하게 안아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