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0] 내가 아니라면, 당신들이 어떻게 천국에 가겠나

yellowday 2012. 7. 13. 06:12

입력 : 2012.07.11 22:27


 내가 아니라면, 당신들이 어떻게 천국에 가겠나


후세페 데 리베라 '내반족 소년' - 1642년, 캔버스에 유채, 164×92㎝, 루브르미술관 소장.


후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1591~1652)는 스페인 출신이었지만 화가로서 주요 활동무대는 이탈리아였다. 그의 대표작인 '내반족(內反足) 소년'은 선천적인 기형으로 발이 굽는 장애를 가진 소년을 보여준다. 그의 모습을 살펴보니, 발뿐 아니라 손마저 뒤틀렸고 성장이 온전치 않아 키가 작은 난쟁이다. 신발은 없고, 닳을 대로 닳은 거친 옷은 몸에 맞지 않게 크다. 초라한 행색의 이 소년은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살아가는 거지임에 틀림없다. 그 처지가 가련하기 짝이 없지만, 정작 소년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온화한 풍경을 발아래 두고 당당하게 서 있는 이 소년은 듬성듬성한 이가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으며 오히려 화면 밖의 우리를 기분 좋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목발을 걸쳐 든 손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비를 베풀라"는 라틴어 문장을 쓴 종이를 들고 있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선명한 글씨지만, 사실 당시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신분의 부유한 이들뿐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불쌍한 이 소년에게 푼돈을 건넬 것이다. 그 마음이 아무리 순수하다고 할지라도 한편으로는 살아생전에 이토록 어려운 이들에게 선행을 베푼 대가로 죽음 이후의 천국을 소망할 것이다. 소년이 당당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신이 없다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선행을 베풀고, 어떻게 천국에 간단 말인가?

소년은 힘든 삶을 견뎌내면서 타인을 위해 천국을 향한 길을 열어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기분 좋은 웃음은 구걸하는 이가 아니라, 오히려 베푸는 이의 여유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