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1] 비싸고 호화로운 예식… 결혼의 참의미는 어디에

yellowday 2012. 7. 18. 06:03

 

입력 : 2012.07.17 22:28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 중 가장 큰 그림은 바로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1528~1588)가 그린 '가나의 결혼식'이다. 세로 7m, 가로 10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화면 안에서는 야외에 내놓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130여명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라는 마을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는데 연회가 끝날 무렵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성모 마리아의 부탁을 듣고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가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일으킨 기적이자 그가 이후에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며 희생당할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로네세는 그 기적의 의미보다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연회를 그려내는 데 주력했다. 테이블은 화려한 도자기와 값비싼 은식기, 섬세한 유리그릇으로 가득하고, 하객은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호화롭게 치장했다. 테이블 위아래를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애완견들조차 말끔하게 다듬고 온 이 연회는 당시 베네치아인들의 호사스러운 취향을 잘 보여준다.

파올로 베로네세 '가나의 결혼식' - 캔버스에 유채, 666×990㎝,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수도원의 식당 벽에 걸기 위해 이 그림을 주문했던 베네딕트 수도회는 반드시 해외에서 수입한 값비싼 안료를 사용하도록 계약서에 명시했다. 내용뿐 아니라 그림 자체도 비싼 사치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물질의 향연 속에서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는 중앙에 홀로 고요히 앉아 있는 예수뿐인 듯하다. 어쩌면 그는 포도주 정도야 얼마든지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이 사람들에게 괜히 기적을 보여주었나 하고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