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31 22:58
2006년 미국 시애틀에 사는 다섯 살 제이크가 농구를 하다 넘어졌다. 아이는 쇠로 된 농구 골대 밑부분에 입을 부딪쳤다. 입 주변 상처로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스트렙A 박테리아가 들어왔다. 근육 세포를 죽이는 '살 파먹는 수퍼 박테리아'였다. 이 균은 아이의 목·가슴·얼굴을 갉아먹으며 무차별로 공격했다.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지만 석 달 사이 22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가톨릭 신자인 부모는 기도에 매달렸다.
▶제이크는 살아났고 이제 열두 살이다. 교황청은 작년 12월 제이크의 생존을 '기적'으로 공식 인정했다. 가족들도 바티칸에 초청했다. 기도가 통했다고 본 것이다. 신의 손길만이 환자를 살린다고 믿을 만큼 이 박테리아는 치명적이다. 몸 조직을 파괴하는 것을 '괴사성(壞死性)', 근육을 싼 막(膜)을 녹이는 염증을 '근막염(筋膜炎)'이라고 한다. 괴사성 근막염을 일으키는 수퍼 박테리아는 17종쯤 된다. 미국·아르헨티나·영국·뉴질랜드·일본·홍콩에서 1970년대부터 발병 보고가 있었다.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스물네 살 에이미가 살 파먹는 박테리아에 감염돼 사지를 잃은 채 죽음 문턱을 헤매다 엊그제 기적처럼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한 달 전 강에서 줄을 타고 움직이는 레저스포츠를 하다 물에 빠졌다. 왼쪽 종아리 상처가 깊었다. 의료진은 수퍼 박테리아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가 괴사성 근막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왼쪽 다리를 잘랐고 오른발과 두 손마저 절단했다. 부모가 추가 수술을 망설이자 에이미는 입술 모양만으로 "한번 해보자(Let's do it)"고 했다.
▶수술 후 의식을 되찾은 에이미의 첫 인사는 "안녕! 우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였다. 농담도 하고 주변 안부도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용감한 아이가 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 울어버렸다"고 했다. 사지를 자르는 고통과 참담함에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는 에이미를 언론은 '진정한 영웅'이라고 불렀다. 조지아주에는 수퍼 박테리아 때문에 팔다리를 자른 환자가 세 명 더 있다.
▶조지아 사람들은 감염 부위를 자르는 것 말고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 잔뜩 겁을 먹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80년대부터 포도상 연쇄구균에 감염돼 괴사성 근막염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 10년 전 영화 '에볼라 바이러스'는 항생제가 안 듣는 세균과 이 바이러스를 이용한 테러를 다뤘다. 인간이 아무리 강력한 항생제를 만들어도 헛일이다. 새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세균이 꼭 나타났다. 인간과 세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신이 구경만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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