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백두대간 잇기

yellowday 2012. 5. 19. 19:29

입력 : 2012.05.17 23:04

"길이 길로 이어져 끝이 없는 것처럼,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제 몫몫 이어져 끝이 없었다. 사람은 물과 산을 따라서 그것에 기대고 사는바, 길이 있기 전에 이미 물길과 산맥이 있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설가 박범신이 장편 '고산자'에 그린 김정호의 어릴 적 모습이다. 김정호는 산하(山河)의 처음과 끝을 밟겠다는 꿈을 키우며 자라 '대동여지도' 만드는 데 일생을 걸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끄트머리에서부터 경상도 안팎을 골골이 더듬고 태백 너머 오대산에 이르니 이듬해가 저물었고, 설악과 금강을 지나 또 한 해 반이 저물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400㎞에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국토의 혈맥(血脈)'으로 불려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백두대간을 13개 정맥(正脈)으로 나눴다. 정맥 이름들은 산줄기와 물줄기를 연결해 지었다. 한강을 에워싸는 지역은 한남, 한북 정맥이라고 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전통 풍수 사상이 그 이름들에 담겨 있다.

▶일제는 1903년 한반도 지하자원을 조사하면서 대간과 정맥이라는 말을 없앴다. 대신 자기네들이 쓰는 단어 '산맥'을 우리 땅에 갖다 붙였다. 일제는 1925년부터 백두대간 곳곳을 끊어 신작로(新作路)를 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수탈한 물자를 빨리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735㎞ 구간만 해도 일제가 허리를 끊은 지점이 예순세 곳이나 된다.

▶백두대간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산악인들만 도전하던 코스였다. 요즘엔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는 일반인이 한 해 1만명에 이를 만큼 새로운 국민 스포츠가 됐다. 주말마다 구간을 달리하며 2~4년에 걸쳐 산을 타는 식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등산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백두대간을 되살리자는 소리도 높아졌다. 정부도 민족 혼을 되살리고 생태 축을 잇기 위해 백두대간 복원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행정안전부가 그제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경계 이화령에서 첫 백두대간 복원 기공식을 가졌다. 산줄기가 끊긴 곳에 콘크리트 터널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산에 사는 동물들이 오가는 생태 통로를 만든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관령을 비롯해 열세 곳을 이을 것이라고 한다. 소설가 김별아는 2년 동안 격주로 40차례 백두대간에 오른 끝에 지난해 완주에 성공했다. 그녀는 "힘들게 걸은 뒤 신발을 벗을 때 퉁퉁 부은 발가락 사이로 부는 바람, 그것은 예술이었다"고 했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들은 자신과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백두대간 잇기가 국민과 국토를 더 가깝게 이어주는 고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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