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원수 같은' 경조사비

yellowday 2012. 5. 7. 20:16

입력 : 2012.05.06 23:13 | 수정 : 2012.05.07 06:43

60대 초반의 택시기사가 '축화혼(祝華婚)'이라 쓰인 봉투를 꺼내 흔들어 보인다. "이게 웬수(원수)입니다. 7년 전 받아먹은 것을 오늘 갚으러 갑니다." 그는 아들 결혼식 때 축의금을 보냈던 다른 택시기사의 딸 혼례에 간다고 했다. "왜 웬수입니까"라고 묻자 "절대 잊지 않고 있다가 갚으라고 뒤쫓아오니까 웬수죠" 했다. 두 택시기사는 그동안 밥을 먹거나 차 한잔 나눈 적이 없다. 지금은 소속 회사도 달라졌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현직에서 물러난 남녀 500명에게 경조사비에 관해 설문조사했다. '크게 부담된다' 26.2%, '약간 부담된다' 57.2%였다. 은퇴한 사람 중 80%가 축의금·부의금의 무게에 눌려 마음병(病)을 앓는 셈이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가구당 한 달 평균 경조사비는 2005년 3만7900원에서 2011년 5만2800원으로 39%나 늘었다. 소득 증가 속도를 많이 앞지른다. 은퇴자들은 현역들보다 경조사비 씀씀이가 더 커서 한 번에 내는 평균 축의금이 7만원을 훌쩍 넘겼다.

▶힘있는 '갑(甲)' 위치의 인사가 경조사를 당하면 손님이 북적인다. 돈봉투 들고 찾아가는 '을(乙)' 위치 사람들은 언젠가 돌려받게 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뜯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준(準)뇌물이요, 준상납금이라고 투덜대며 봉투를 만드는 일도 흔할 것이다. 고위 공직자가 주위에 알리지 않고 자식 혼례를 치렀다는 뉴스를 위선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우선 나부터" 이런 폐습과 선을 긋겠다는 그 뜻만은 사줘야 한다.

▶특히 웨딩 시즌인 봄·가을에 은퇴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첫째 아이 결혼 때 축의금을 받았는데 둘째가 미혼이라면, 그는 어디든 봉투를 들고 찾아가야 할 처지다. 은퇴자들의 연간 경조사비 총액은 116만원이다. 이들은 '얼굴(체면)이 안 깎이려고(46%)' 또는 '과거에 받았던 금액 때문에(42%)' 무리를 한다. 자신의 생활수준에 맞춰 액수를 정하는 사람은 2%뿐이다. '가족·친척 중심으로 간소화하자'거나 '아예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경조문화 개선 의지는 강하지만, 현실은 꿈쩍도 안 한다.

▶원래 축의금·부의금은 큰일 당했을 때 '서로 돕자'는 의미가 깊다. 그러나 지금은 열에 여덟이 '서로 괴롭히는 짓'이라며 고통을 호소한다. 그 고통에서 해방되려고 어떤 직장인들은 각자 2만원씩 모아 여러 사람 이름으로 10만원을 내기도 한다. 은퇴자는 이럴 방법도 없다. 축의금이 은퇴 후 빠듯한 생활비를 축내는 판이다. 안 내도 불법은 아니다. 체면 따질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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