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NL식 감상주의

yellowday 2012. 5. 9. 14:47

입력 : 2012.05.07 23:08

1980~90년대 운동권의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음악 형식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운동권이 주사파로 대표되는 NL(민족해방)과 서구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PD(민중민주)로 갈렸듯, 예술운동판도 둘로 나뉘었을 때였다. NL은 "운동가요의 대중성이 중요하다"며 일본 엔카를 떠올리게 하는 트로트까지 수용하자 했다. 반면 PD는 "음악 형식도 혁명적이어야 한다"며 소비에트 혁명음악을 따라했다.

 

▶전대협과 한총련 시대를 거치며 NL계 음악인들은 '서울에서 평양까지' '백두산'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같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운동권 노래답지 않게 편한 멜로디에 부드러운 노랫말을 얹었다. 유치한 율동도 곁들였다. 이제 이 노래들은 '열린음악회'에 나오고 어린이들이 동요처럼 부른다. NL은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전략을 썼다. 주체사상이라는 엉성한 이념이 운동권 주류(主流)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다.

▶NL은 미국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지목하고 운동 목표도 반미(反美)로 단순화했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대표적인 예다. "미군이 여중생을 죽였다" "미국 때문에 광우병 걸려 죽겠다"는 단순한 주장에 반미를 버무렸다. 숨진 소녀들의 시신과 쓰러지는 소의 동영상을 거듭 인터넷에 올렸다. "뇌 송송 구멍 탁" "광우병은 생리대로도 전염된다"는 감성적 선동 앞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맥을 추지 못했다.

 

▶NL은 내부적으론 북한식 행태를 흉내냈다. 행사 끝무렵엔 서로를 비판하는 '총화' 시간을 갖는다. '자체 평가'라는 말을 놔두고 굳이 '총화'라는 표현을 쓴다. 북에서 주민끼리 서로 비판하는 모임 '생활총화'에서 나온 말이다. 리더에 대한 절대 복종의 배경엔 북의 '수령론'이 있다. 지난 주말 진보당 전국운영위원들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논의하면서 네모난 이름표를 들어 안건을 표결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원증을 들어 표결하는 모습을 빼닮았다. 당권파 당원들이 함께 박수치고 울고 소리치며 회의를 막는 것도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어제 자신을 비롯한 당권파 처지를 측근 비리로 수사받다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유했다. 이 대표는 "노 대통령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나는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 (비리 의혹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경선 부정에 책임을 지라는 요구에 엉뚱하게 노 전 대통령을 들먹이며 '감성 코드'로 맞선 것이다. 이론은 엉터리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가 빼어났던 NL식 감상주의도 이젠 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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