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은 기적을 행한다, 바로 이 책처럼"
입력 : 2012.04.24 22:40
- '켈스의 책'… 800년경, 양피지에 채색, 33×25cm,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소장.
서기 800년경 제작된 '켈스의 책'은 중세 유럽 도서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서기(書記) 네 명과 삽화가 세 명이 몇년에 걸쳐 일일이 손으로 만든 340페이지짜리 이 책에는 양(羊) 185마리분의
양피지와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고급 안료가 쓰였다. 이 책은 신(神)의 말씀을 담은 성스러운 존재일 뿐 아니라,
소요된 물질만으로도 지상 최고의 보물이었던 것이다.
이 책이 정확히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0세기경부터 17세기에 지금의 소장처인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으로 옮겨질 때까지 아일랜드 켈스의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어서 '켈스의 책'이라고 불린다.
책의 주 내용은 신약성서 중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담은 네 복음서다. 그중 이 페이지<사진>는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마태오 복음서의 첫 장이다.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의 첫 글자인 카이(X), 로(P), 이오타(I)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h. generatio' 즉 '태어났다'는 라틴어 문장이 있다. 이처럼 본문은 라틴어지만, '그리스도'만은
그리스어로 'XP' 혹은 'XPI'라고 적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확대된 문자를 가득 채운 다채롭고 섬세한 무늬 가운데에는 그림들이 숨어 있다. 화면 꼭대기와 P에는 예수로 보이는
금발 청년이 있고, X의 왼쪽 획을 따라 부활을 상징하는 나방, 날개를 접은 천사 셋이 있다.
그 아래엔 성찬식의 빵을 갉아먹는 생쥐와 그 생쥐를 노리는 고양이가 보인다. 대부분 문맹(文盲)이었던 중세인들에겐
책이라는 작은 물건이 이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었을 것이다.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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