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58] 손마디 투박한 民草들, 진지하게 선거에 임했다

yellowday 2012. 4. 14. 19:33

입력 : 2012.04.12 23:02

늙수그레한 남자 다섯 명이 한데 모여 앉았다. 앞치마를 둘렀거나, 두건을 썼거나, 단추가 많이 달린 외투를 입은 그들의 차림새는 격식이 없고 허름하지만, 자세만큼은 하나같이 진지하다. 이들의 눈과 귀가 온통 쏠려있는 건 신문이다. 신문에는 다가올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 면면이 실려있다. 19세기 독일의 사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빌헬름 라이블(Wilhelm Leibl·1844~1900)의 '시골 정치가들'이다. 라이블은 주름진 그들의 얼굴뿐 아니라 투박한 손에도 표정을 불어넣었다. 세밀하게 그린 다양한 자세의 손은 지금 그들이 선거에 쏟아붓는 기대와 긴장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라이블의 '시골 정치가들' - 1877년, 캔버스에 유채, 76×97cm, 오스카르 라인하르트 미술관.
뮌헨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라이블은 그곳을 방문한 프랑스 사실주의 대가 구스타프 쿠르베를 만나 극찬을 듣는다. 쿠르베의 초청으로 파리를 방문한 라이블은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자 했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등 당대 프랑스 미술의 큰 흐름을 접할 수 있었다. 독일로 돌아와 '라이블 서클'이라고 하는 추종자들을 낳을 정도로 화단(畵壇)에 많은 영향을 미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바바리아를 비롯한 농촌 지역에서 보내며 평범한 농부와 시골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묘사했다.

라이블은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곧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어쨌든 그들의 영혼은 이미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소박한 촌로(村老)들의 겉모습에 이처럼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선거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를 담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