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4.17 22:53
풍속화를 주로 그렸던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오귀스트 비야르(1798~1882)가 1847년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대회랑 모습을 보여준다. 오후 4시 폐관을 알리는 관리인들이 등장하자 안 그래도 복잡한 전시실이 아수라장이 됐다. 작품을 하나라도 더 보려는 사람들과 평론을 열심히 읽는 사람, 그 사이에서 어린아이가 겁에 질려 떠밀려 다닌다.
루브르는 요즘도 하루 평균 1만5000명이 방문하는 거대 박물관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루브르에 지금처럼 평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었던 건 아니다. 12세기에 요새로 지어진 이 건물은 14세기에 궁전으로 개축되면서 왕의 개인 소유인 서적과 미술품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실의 사유재산이던 루브르의 소장품이 일반에게 완전히 공개된 것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였다.
루브르는 요즘도 하루 평균 1만5000명이 방문하는 거대 박물관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루브르에 지금처럼 평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었던 건 아니다. 12세기에 요새로 지어진 이 건물은 14세기에 궁전으로 개축되면서 왕의 개인 소유인 서적과 미술품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실의 사유재산이던 루브르의 소장품이 일반에게 완전히 공개된 것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였다.
- 비야르 '4시의 대회랑, 폐관합니다'… 1847년, 캔버스에 유채, 57x67cm, 루브르박물관 소장.
그전까지 일반인들이 루브르에서 미술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살롱전(展)'뿐이었다. 왕립 미술아카데미가 1725년부터 회원들의 작품을 루브르의 정사각형 방인 '살롱 카레'에서 전시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1~2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적인 행사가 되면서 '살롱전'이라고 불렸다. 전시는 오늘날과 달라서 비야르의 이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에 조그만 틈도 남기지 않고 그림을 빽빽하게 걸었다. 당시 서양 최대의 전시회였던 만큼 늘 수많은 사람이 몰려 전시실은 콩나물시루 같았고, 미술가와 비평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목청 높여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쾌적한 미술관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는 안복(眼福)을 누리다 보면 요즘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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